훈련병때였다.

행군을 제외하고 훈련의 꽃이라던 유격훈련 마지막 날. 이미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조교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주고, 어느 작은 능선에서인가 우리는 스크럼을 짰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옆 전우의 열기는 멀리서 내리쬐는 태양빛의 온기보다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여기 저기서 가는 내쉼 소리가 들렸고 나 또한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어깨로 훔치며 알 수 없는 악이 생겨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과 잠깐 쉬고 있다는 여유로움이 동시에 밀려들고 있는 와중에 조교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여러분들은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전초전을 이제 막 마치려 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제각기 살아온 환경이나 방식이 다르고, 앞으로 살아가야할 환경과 방식 또한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생김생김이 모두 다른 여러분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 같이 지금 여러분이 땀을 흘리고 있는 이 와중에도, 여러분이 보초를 서고 있는 새벽에도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어머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자리에서 비록 고통스러운 훈련을 받고 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을 이렇게 훌륭하게 남자로 태어날 수 있게 해 주신 어머님을 위하여 어머님 은혜를 부르도록 하겠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오글거리는 면이 많았다고 느껴지지만, 그 상황에서는 오직 조교가 한 말 마디마디, 단어들의 중요성 밖에 떠오르지 않던 상황이었다. 조교의 말 그대로, 그가 하는 말의 의미대로 우리는 누군가의 선창으로 어머님 은혜를 불렀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땀으로 온통 샤워를 한 얼굴에 거짓말처럼, 우리가 품었던 악은 이미 사라졌고, 눈물로 주변 전우들의 얼굴을 뒤덮었다. 눈물… 많이 잊고 있었던, 많이 슬프고, 많이 아프지 않으면 또는 많이 기쁘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 아마 모두가 그랬으리라. 투정부리고, 속 앓게 해드리고, 말썽만 부렸던 당신의 아들의 모습이 이렇게 처절하리만큼 안타깝도록 눈물에 젖어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부끄러움은 털끝만큼도 생기지 않았고, 우린 모두 ‘어머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한없는 아림과 안타까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으로가 아닌, 어머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살면서 그리 많지 않은 기억 중에 속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까이에 있으면 소중함을 늘 당연함으로 인지하고 있듯이, 그때의 마음이 많이 옅어졌지만, 하루에 한번, 두세번 쯤은 어머님 뒤에서 몰래 안고, “엄마!”하고 애교도 부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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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은혜

훈련병때였다. 행군을 제외하고 훈련의 꽃이라던 유격훈련 마지막 날. 이미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군대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조교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주고, 어느 작은 능선에서인가 우리는 스크럼을 짰다. 얼굴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옆 전우의 열기는 멀리서 내리쬐는 태양빛의 온기보다 훨씬 뜨겁게 느껴졌다. 여기 저기서 가는 내쉼 소리가 들렸고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