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ding Neverland
‘아이가 첫 웃음을 터트렸을때 그 웃음이 그 아이의 요정이 된단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 세상에는 요정 따윈 없어 그러는 순간 그 요정은 땅에 떨어져 죽고말지.. 넌 요정을 믿니?’
내가 너무나 작은 아이였을 때, 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했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다고 여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믿었기에 나는 늘 어른이 되고 싶어했었다. ‘어른’이 되지 않았던 나는 슬프면 눈물을 흘리며 울 줄 알았고, 즐거운 일에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을 줄도 알았고, 화가 나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될 정도로 화를 낼 줄도 알았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면 꼭 끌어안고 누군가를 토닥여 줄 줄도 았았는데,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슬퍼도 웃어야 하고, 즐거워도, 화가 나도, 마음이 행복하거나 쓸쓸할 때에도 나는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작은 일에 웃고, 울지 않는 법을 깨닫게 되었으며, 타인의 시선에 부담을 느낄 줄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사람을 만나고, 삶을 이어가면서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 보다는 ‘우리’와 ‘그들’에 요구와 분위기를 알아서(?) 수용할 줄 알아야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들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것들을 너무나 많이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믿기 보다는 외부에서 보여지는 잣대로 판단을 하게 되고, 상상하기 보다는 보여지는 현실에 만족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내 안에 있는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어릴 때 품었던 커다란 상상과 꿈이 더는 내것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착각 때문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아마 이룰 수 있는 꿈과 그렇지 않은 꿈을 구별해 낼 줄 아는게 바로 어른이라는 너무나도 재미없는 말로 나도 모르게 아이와 어른을 나누어 버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Never Land’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장소이자, 동시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 꿈의 나라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 세상을 열어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고, 그저 그 세상이 내 앞에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그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나에게 ‘Finding neverland’는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친구,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내’가 믿고 꿈을 꾸고 있는 세상의 존재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기억을 되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