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맨(The Family Man, 2000), 스포 있음
내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언제였을까? 이미 지났을까? 럼블피쉬의 노래처럼, 아직 내 삶에 가장 눈부시던 그날은 오지 않은걸까? 그리고, 왜 성공하려고 애를 쓰며, 무엇에 성공하려고 하는걸까? 문득 반복되는 일상이 의미없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그리고는, 그 언젠가 내렸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혹은 그때 내렸던 반대의 결정을 한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니콜라스 케이지와 테이어 레오니 주연의 패밀리맨은 아래와 같은 물음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Don’t you lose Something in your life? 혹시 살아가면서 잊으신건 없나요?
줄거리
잘 나가는 증권사의 사장이자, 남부러울 것이 전혀 없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성공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30대 중반의 잭 캠벨(니콜라스 케이지)은 중요한 인수합병 협상을 앞두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는다. 편의점에서 강도(?)에게 선의를 베풀고 호텔로 들어와 잠이 든다. 잠에서 깨어난 캠벨은 늘 자신이 기거하던 호화로운 호텔이 아닌 어느 낯선 여자와, 낯선 집에서 놀라운 아침을 맞는다.
허둥지둥 자신이 살던 호텔로 돌아가 보고, 회사로 돌아가 봤지만 이미 자신의 존재는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듯 하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자 아침에 일어났던 그 집으로 향하게 된다. 캠벨은 이제 13년 전 공항에서 떠나지 말라며, 함께 지내자고 했던 케이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그리고, 지방의 작은 타이어 판매 회사의 사장의 삶을 떠안게 된다. 미칠 노릇이다. 자신이 꿈꿔오던 것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야할 처지의 캠벨. 그는 이 삶을 되돌려 놓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점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삶에 행복을 느끼게 되어, 오히려 이전에 자신이 믿고 있던 성공한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몇 주가 흘러 다시 증권가의 사장으로 눈을 뜬 캠벨은 13년 전 헤어졌던 케이트를 찾아내고, 13년 전에 캠벨이 그랬던 것 처럼, 공항에서 그녀를 보내야 한다. 어제 꾸었던 꿈에서 무료 변호사 일을 하던 케이트가 아니라, 파리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려는 케이트를 잡고 있다. 그녀를, 그가 꾸었던 행복한 꿈을 다시 놓치지 않으려고…
성공의 기준
사실 영화 자체의 시나리오나 그림들은 특별하지는 않다. 20~30분 정도 보다 보면 줄거리가 살짝 보이고, 결말도 보이고, 대략 상황들의 전개들이 쉽게 예상되는 영화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로 남겨두고 싶은 건, 서두에 잠깐 꺼냈던 이야기처럼, 어떤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면,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쉽게 지나치는 관계들을 성공이라는 이유로 그냥 매어둘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를, 내게는 꽤나 깊게 생각할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준과 가치는 누구에게나 다르게 매겨진다. 타워팰리스의 팬트하우스를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 하루에도 수 십 번씩 TV와 뉴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사람,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회자되어야 하는 사람. 성공은 늘 돈과 명예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야 성공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나를 포함해서 적어도 지금 세기를 살고 있는 숱한 사람들의 공통된 가치관은 성공은 곧 돈과 명예이다.
실제로 무척 바쁘게 한주를 보내고, 또는 어떤 일에 장시간 미쳐서 지내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집에서 조용히 쉬고 있거나, 잠깐 책상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밝혀 있는 불빛들을 보다가 문득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수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토론하고, 화를 내고, 웃으면서 보냈음에도 그 잠깐 5분, 10분의 홀로 있는 시간이 미치도록 외로워 본 적이 있는지? 사람마다 그때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다르겠지만, 딱히 외롭다는 것 보다는 그저 무언가 텅 비어있다는 느낌. 그런 느낌들을 캠벨을 보면서 내가 흠뻑 빠져들었다.
행복의 기준
일주일, 한달, 일년을 숨가쁘게 달리면서 우리가 어느 선, 어느 점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 때가 되면 한 평생 내내 달려왔던 이유를 그리고, 성공이라는 가치 종착역에 도착했음을 깨닫게 될까? 가족만이 유일한 구원이자 최고의 성공이다로 간단하게 끝맺음 하려는게 아니다. 성공이라는 가치를 과연 어디에 나는 두고 있으며, 그 ‘역’에 도착하기 위해서 차근차근 달리고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 부모님, 아내, 아이들을 위한 가족을 만들기 위한 삶.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공허함을 막기 위해서 애쓰는 삶. 결국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내 가까이의 가장 작은 사회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 그렇게 모두들 살아가고 있는 삶.
쉽게 보고, 쉽게 잊혀질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무게의 영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상하게도 그렇게 물음표로만 채워져 있던 마음속에 아주 작은 느낌표가 그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도 살짝 꿈틀거리고 있음은 그래도,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내가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있나부다.
조금만 쉼표를 채우고 주변에 돌아봐야할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성공의 자리에 서게 되면, ‘내’가 너무 잘나서가 아니라, 배우 황정민의 수상소감처럼 주변의 너무 훌륭한 사람들이 ‘나’를 성공시켜 주기 위해서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 왔음을 기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성공해서 행복하다기 보다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므로 난 성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참. 엉뚱한 성공론이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