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때, 친구 녀석 집의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왔던 비틀즈의 Girl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의 마이마이 CF였던가, 자전거를 타며 연인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었드랬다. 나에게 비틀즈는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던 듯 하다.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굉장히 서정적인 CF의 느낌이 한데 어우러져 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당시는 노랫말에 담긴 자세한 뜻을 알고 있지는 않았으므로, 그저 곡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20여년이 가까이 지나, Across the Universe는 서정적인 느낌으로만이 아니라, 조금은 더욱 또렷한 스토리를 갖고 영상을 가득 채우며 비틀즈의 음악 이야기를 시작한다.
Is there anybody going to listen to my story, all about the girl who came to stay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누구 없나요. 내 곁에 머물렀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 – 도입부
영화는 이렇게 비틀즈의 31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서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베트남전 당시의 미국. 리버풀 출신의 ‘쥬드’와 젊음의 방황을 무기로 자유를 원하는 ‘맥스’ 그리고 ‘맥스’의 여동생 ‘루시’를 축으로 하여 그들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워낙 유명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비틀즈의 음악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어쩌면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인상을 지우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음악, 노랫말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이 되는 상황들을 곰곰히 들여다 보면, 곳곳에 곡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해 주는 장치들이 있고, 특히 한국말로 번역이 된 가사들을 보니 존 레논이 얼마나 위대한 사상가였나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영어로 듣기만 하던 노래들이 이런 뜻이었나 하는.. -_-;;)
‘비틀즈의 음악으로 구성된 뮤지컬 영화’와 예고편만 보고 극장을 찾은 터라, 어떤 느낌을 줄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는 아무 정보 없이 봐야해’라던 친구의 말 처럼, 스포일러를 포함한 너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찾게 되는 영화는 기대치가 높은 만큼 오히려 개인적으로 ‘졸작’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물론 영화에서 친절하게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등에 대한 설명을 해 주지 않으면 그런 무정보가 오히려 영화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그저 영화를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만 해석하게 되는 편견을 낳을 수도 있긴 하지만.
또한 영화는 realism에 대한 내용과 함께 간간히 몽환적이며 환상적인(?) 느낌의 영상들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감독의 어떤 감각이나 스타일을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못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장면들이 주는 느낌이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려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를 보는 내내 즐거움과 흥분은 끊이질 않았다. 청춘물, 성장기와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도 있겠으나, 당시에 홍역처럼 앓게 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성장통처럼 겪게 되는 방황이나 반항 따위야 말로 20대에 가장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한 성장통이 지나고 나서야 ‘어른’이라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그 때의 두려움과 고통들이 오히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웃고, 울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도 다시 또 사랑하고. 20대가 아니면 다시는, 두 번 다시는 겪지 못할 나와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세대를 넘나드는 비틀즈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며, 또래는 아니지만 이미 겪어 봤을 만한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또 한번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영화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혼자서 조용히 음악과 영상을 느껴보시라고 권해드리고픈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