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무엇인가?
슬럼독은 Slum과 Dog가 합쳐진 말 그대로 빈민가에서 ‘굴러든’ 개라는 뜻이 될 수 있다. 굳이 아카데미의 명성을 쫒은 것은 아니지만, 8개 부문 수상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의 실체는 월차를 맞아 간만에 본 영화에 걸맞지 않은 물음표였다. 이미 영화 제목에서 펼쳐지듯이 ‘미리 예상되는’ 즐거움과 불안감을 안고, 그것도 굉장히 좋은 자리에 앉아서 집중하며 영화를 관람했으나, 아쉬운 부분이 더 많은 것은 이미 ‘판타지’임을 알고 극장엘 찾았기 때문일까?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너무 많은 판타지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그것도 개천에서 용나는 실화 또는 영화같은 스토리는 TV를 틀어봐도 숱하게 나오고, 주변에서도 왕왕 들리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 그런데, 이 영화는 왠지 인도와 할리우드가 두손 꼬옥 잡고 ‘그래. 한번 인도를 보여주자’라는 뉘앙스를 시작으로 영화를 계속 이끌어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든다.
사실, 초반부의 흥미진진한 전개와 아역배우들의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들은 심장을 두근 반, 세근 반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인도의 과거와 현재로 비춰지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면서, 과거 60~70년대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또한 천재가 아닌, 주인공의 삶 자체가 퀴즈에 녹아 있다는 결과론적인 전개 역시 무리 없이 어느 정도는 신선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혹시 말이다. 혹시 인도의 불편한 사회상과 생활상을 화면으로 보면서 헐리웃과 우리가 느끼는 과거 향수에 대한 현재의 만족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라는 것이 개인이 만족하면 그만인 것이지만, 이 영화가 상업성을 타는 이유 자체가 사뭇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극심한 오바일까? 인도와 헐리웃, 그리고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 과연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그 ‘무엇’은 무엇이었을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분명 좋은 영화이다. 간디와 IT신흥국이라는 것 밖에 모르는 무식한 나로써는 인도라는 나라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인도의 어두운 사회상과 빈민촌의 다소 우울한 현실들이 깔려있지만, 역동적인 영상과 편집, 아늑한 첫 사랑에 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분명 내게는 ‘좋은’ 영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걸작’의 반열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될 것이냐는 물음에는 ‘아니오’라고 답을 해 주어야한다.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하는 영화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명작을 가르는 기준이야 일반인으로써는 천차 만별이겠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위에 언급한 것이 내가 느끼는 전부이다. 무거운 감동이 아니라, 현재에 반영할 수 있는 그 어떤 무언가에 말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그렇다면 무엇이었을까? 그저 어렵게 살아온 누군가가 갑자기 백만장자가 되는 인생역전 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이었을까? 아니면, 극장을 나오면서 ‘감동’이라는 그 무언가를 붙잡고 한동안 이런 저런 생각들을 더 품게 만들고, 영화를 공유한 사람과 어떤 무언가를 함께 나누며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결론적으로는 2가지 모두 다 해결해 주지 못했다. 좋은 영화이지만,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낳지 못하는 영화. 유치하지만, 마지막 문제를 틀리며 나오는 반전 또는 마지막 문제를 맞추고, 첫 사랑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어떤 반전을 기대한건 나 뿐이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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