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생겼다. 이제 70여일 된 귀여운 공주님이 생겼다. 열달을 뱃속에서 안고만 지내던 와이프가 안쓰러운 날들이었는데, 매일 모유수유로 힘들어하던 시간을 보내고, 가슴 때문에 아파던 시간을 보내던 와이프는 그 날들이 힘들었지만, 이제 겨우 아기의 웃음을 보면서 와이프도 나도, 우리도 함께 웃고 있다. 한번도 찾아보지 않았던 육아와 관련된 글들을 접하기도 하고, 아빠로써가 아닌 남편으로 더 해주지 못하는 마음 아픔에 한숨도 쉬어보기도 하고, 새벽에 깨서 기저귀를 갈아주면 주섬주섬 모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또 마음이 아파오던 날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지만, 점점 우리를 알아보고, 소리에 반응하고, 표정을 만들고, 아무 고민없이 잠들어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일이 세상에 무엇 보다 위대한 일이고 감격스러운 일임을 깨닫고 있는 70여일. 엄마가 되는 일도, 아빠가 되는 일도 여전히 서투르고, 어설프지만, 더군다나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그래도 이 웃음에 우리가 웃었던 날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들을 기억해야 한다.
#2
자리가 바뀌었다. 물리적인 위치의 자리도, 의미적인 위치의 자리도 바뀌었다. 고민도, 생각도, 대화도 많았지만, 내가 가고 있고 그리고, 가야할 길에 대한 변화를 내 스스로 동의하지 못하는 변화에서 여전히 물음표를 안고 살고 있다. 30대의 시간을, 거의 10년의 시간을 일과 삶에 대한 균형이라는 단어를 무시할만큼 사랑했던 시간들이었고, 사람들이었다. 웃을 줄 알았고, 고민할 줄 알았고, 힘들어할 줄 알았고, 즐거워할 줄 알았는데, 자리가 바뀌기 이전부터 나는 웃지도, 고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같은 혹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쓸쓸한 이야기들-혹 다른 상황에서는 쓸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을 나누며 하루를 보낸다. 내려 놓을 건 내려 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할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거 아니냐고 가까운 친구가 술 한잔 건네며 해준 그의 깊은 염려와 격려가 너무나 고맙고 고맙지만, 나는 20대에 그랬던 것 처럼 나에게 온, 오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 물음표를 안고 있다.
#3
정기적으로 할 일들을 만들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리뷰를 쓰는 서평단에 뽑혀서 한 달에 한권 책을 선물 받게 되었고, 한달 동안 찍은 가족들의 사진을 인화해서 월별로 사진첩을 만들려고 하고 있고, 한달에 한번은 꼭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서 저녁을 함께 먹는 시간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치관을 공유하고, 때로는 갑론을박을 펼치기도 하지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삶에 있어서의 지식이 아닌 지혜와 경험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있달까.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을, 사람을, 상황을 가벼이 여긴 적은 없었다고 믿고 있지만,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늘 달리기만 했고, 뒤쳐지지 않으려 했고, 먼저 나가려는 모습만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자던 20대의 모토는 잊혀졌고, 그만큼 나는 매일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놓치지 않으려는 정기적인 몸부림을 즐겁게 시작해 보려고 하고 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게 하려는 일 보다, 오늘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또는 내가 그동안 깊게 의미를 두었던 미래에 대한 가치도 조금은 내려 놓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오히려 정기적인, 그래서 장기적인 삶의 변화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