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으며 보내줄걸. 매일 매일 열 다섯번씩 안아줬는데 오늘은 그냥 들어가라며 냉랭하게 등원을 시킨 날이었다. 그래도 녀석은 헤어지기 전에 용기를 낸건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안아줘…

녀석을 등원시키고 차에 쓰레기들을 정리하려고 녀석이 먹던 우유를 집어 들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우유는 빨대가 꽂혀 있는 상태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어제 저녁, 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남은 우유를 집어 드는 순간까지의 상황들에 대한 감정이 몰려오면서 주차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나는 끝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장모님은 거의 탈진 상태셨다. 3명의 아이를 각각 하원 시키고, 각각 밥상을 차리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게다. 내가 도착했을 때 녀석은 이미 저녁 식사를 절반 정도 한 상태였지만 장난감을 만지며, 티비를 보며, 혼자 역할놀이를 하며 할머니의 피곤함을 몰라주고 있었다. 내가 밥 먹이는데는 결국 50분이 걸렸다. 중간 중간에 반 협박으로 티비를 끄겠다는 으름장도 통하지 않아서 나는 티비를 꺼버렸고, 녀석은 다른 놀이에 집중하고 나는 거의 냉담한 어조로 간신히 밥을 다 먹였다.

식사가 끝나고 녀석과 언니들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크레파스로 언니들이 그림 그리는데 아웃사이더 같이 그저 ‘나보다 잘 그린다’와 같은 추임새만 넣고 있었다. 어울리지 못하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예전 나의 모습과 같아보였다면 너무 과한 생각이었을까… 녀석이 눈치 보는 것만 같은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녀석들이 그림을 서둘러 완성하길 바랬고, 서둘러 ‘우리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둘째가 얘를 왜 싫어하는지 알아? 지난 번에 집에서 엄청 떼쓰고 소리지르고 울고 난 뒤부터야

나는 녀석이 좋아하는 목마를 태우고 주차장으로 향했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그래도 재잘재잘 이야기들을 나눴다.

우리 딸. 큰 언니랑 노는게 좋아 아니면 작은 언니랑 노는게 좋아?

큰 언니는 나를 안 좋아해. 둘째 언니는 나랑 좀 놀아줘

집에 녀석을 덜렁 내려주기가 싫어서 나는 다시 목마를 태워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내일 그러니까 사실상 오늘 아침에 먹을 빵과 우유를 사러. 녀석은 딸기 우유를 골랐다. 오늘 아침에 남겨진 그 딸기 우유 말이다. 고작해야 10분도 채 갈리지 않은 거리였지만 우리는 사랑을 속삭였고 나는 안쓰러운 마음만 커져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탈진한 사람처럼 거실 마루에 주저 앉았고 이내 치킨을 시켰다. 그리고 녀석과 나는 늘 그랬듯이 큰 의미없는 놀이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레고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착한 치킨을 허겁지겁 먹으며 녀석의 레고 공주 성을 조립하는데 하나 하나 너무 자세히도 또는 너무 건성으로 알려주지 않는 그 사이 언저리 어디엔가에서 도왔다. 그리고 녀석의 몸을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주며 혼자 오늘 일들을 떠올렸다.

매일을 마찬가지로 힘들게 보내고 있는 우리 와이프지만 오늘도 와이프는 녀석의 몸을 말리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주었다. 밤 11시가 되었고 시간이 너무 늦었다며 책을 읽지 않겠다고 와이프가 선언하자 녀석은 떼 아닌 떼를 썻다. 덕분에 녀석은 엄마의 등 긁어주기를 하사받지 못하였고 녀석은 꽤 긴 시간을 뒤척였다.

밤 12시가 훨씬 넘었을까. 나는 녀석이 잠든 줄 알고 녀석의 얼굴을 보려고 벌떡 일어났는데 녀석의 눈은 말똥말똥. 그리고 녀석에게 뽀뽀를 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나에게, 여전히 어설픈 아빠인 나에게,

아빠. 뽀뽀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우리는 침대를 넘어서 10여분을 그렇게 한쪽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어제 저녁, 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남은 우유를 집어 드는 순간까지의 상황들에 대한 감정이 몰려오면서 주차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나는 끝내 울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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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딸기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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