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실패를 하며 성장했다. 누군가의 평가 보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규격화하고, 조직화하고,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형태의 일을 선호해 왔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실패했다.
Redmine을 통한 프로젝트 표준화
수 년 전에 회사 내에 프로젝트 관리도구를 Redmine 으로 공식화해서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통해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고자 했었다.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포맷과 절차가 없다 보니,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게 되는 이슈와 리스크를 매 프로젝트마다 관리하는데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무엇 보다 기준이 되는 포맷을 개개인이 만드는 수고를 최소화하고, 그 안에 담겨진 과정 또는 결과물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고 싶었다.
부서 내 개발자와 여러가지 상의를 하고, 플러그인을 붙이고, 위키를 달고, 각각의 표준 게시물에 이전, 다음 프로세스 그리고, 산출물 등의 다양한 개념들을 문서가 아닌 프로젝트 도구 자체에서 내려 받고, Task들을 직접 등록, 수정, 배포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산출물들을 정리하는데만도 꽤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실제 모바일 프로젝트 내에서 수 차례 테스트겸 실행도 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표준화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 많은 변명과 이유가 있지만, 결국 그 ‘표준화’라는 것들을 다시 또는 새롭게 ‘학습’해야 하는 사용자들을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 제일 컷다. 변화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부터, 기존 프로세스를 답습하다 보니 보고 따로 프로젝트 문서 따로 만드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Redmine의 표준화를 설파하고, 독려하고, 때론 비난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실패했다.
팀(User Experience Team)에서 그룹(Smart Media Group)으로의 확장
수 년 전에 임원들과 다양한 고민들을 하면서 UX팀을 꾸렸었다. 팀원은 고작 3명.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세명이서 앞으로 출시될 아이폰이 보여줄 청사진들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연구와 연구를 거듭했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의 팀원은 5명이 되었고, 10명이 되었고, 베타 테스트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는 어엿한 매출을 뽑아내는 부서 내에서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으며, 어느덧 부서 인원은 20명에 가까웠다. 대외적으로도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뭐든 새로운 세상이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Native 앱을 고수하던 우리의 제작 방식은 반응형웹으로 인해서 그 수요가 줄어들고 있었고, 너무나도 다양한 안드로이드 기기들과 해상도로 인해서 기술적인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팀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이 고안되고, 실행되고, 적용되면서 점차 내부적인 방법론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부서는 만 3년을 기점으로 분해되었다. Native GUI를 디자인하던 팀원들(언젠가 그들에게 꼭 Interactive Designer라는 직책을 만들어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은 웹 프로젝트 팀으로 옮겨갔고, Android를 개발하던 개발자는 jsp 개발자로, iOS 개발자는 CTO 개념의 개발 프로젝트 총괄로 각각 흩어지게 되었다. 나 역시도 수 년 동안 모바일의 이슈에서 허우적대다가 회사의 영업 대응을 위한 제안서, PT 등을 담당하는 전략컨설팅팀으로 발령이 났다.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때였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그렇게 보내고, 나는 다시 모바일에서 원하던 무언가를 찾지 못하고 다시 실패를 겪었다.
뉴미디어(New Media) 팀
타인의 권유와 독려로 인해서 나는 또 다시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Adobe Flash는 디지털에서 Interactive한 경험을 주는데 일조를 했었고,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에도 모션그래퍼와 액션스크립터의 직책을 갖는 인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선언으로 플래시는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조직 내 재무이사는 해당 인원들을 나와 함께 뉴미디어팀으로 다시 묶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수 개월을 연구 아닌 연구에 매달리며, 다양한 기술들(API가 있고, 이를 팀 내에서 비즈니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이해하며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술 개발에 대한 결실을 맺기 전, 우연히 오프라인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업체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업체가 부족한 일부분을 우리가 채워주면서 하나의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결과적으로 나는 뉴미디어팀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 솔루션은 나의 기대와 달리 날개가 돋힌 듯 팔려나가지 않았고, 고작해야 5회 미만의 1일 프로모션 행사로 마무리되었다.
제안 조직, 컨설팅팀
제작 대행사 체제에 오래 몸담고 지내다 보니, 각종 제안과 관련된 업무들을 접하게 되고, 최근 대부분의 이력은 제안이 많은 편이다. 작게는 2명에서 많게는 7명까지 T/O를 이끌면서 다양한 기업에 다양한 제안을 맡게 되었다. 수주한 이력도 많고, 실주한 이력도 많지만, 제안 조직은 빠듯한 일정 내에서 최고 보다는 최적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제시해야하다 보니, 늘 몸과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내가 머물렀던 조직에서 머물렀던 기간만으로 본다면, 나는 역시 커다란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저 그 달에, 그 해에 (조직이) 목표했던 일부를 달성했을 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늘 새로운 과제들 뿐이었다. 이를 실패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를 넓히고, 그 관계의 시작이 우리의 조직을 알리는데서 출발해야 했고, 누구 보다 조직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생각 보다 고되고 생각만큼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내가 몸 담았던 조직은 결국 No.1이 되지는 못했으니까.

그래도 얻은 것들
그래도 나는 성장했다. 분명 5년 전, 3년 전, 작년의 나 보다는 더욱 합리적이라고 자부하고 있고, 지식은 지혜가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겪었던 실패들은 조직에서의 시행착오에 대한 교휸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오롯이 자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은 혹은 잃었던 사람과 노하우, 환경, 생각, 스킬 등의 모든 것들은 지금, 오늘의 나를 만들어주었던 기록들이기 때문에 어제, 작년의 실패에 큰 미련을 두거나, 좌절할 만큼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성장하고 성숙할 수록 과거에 해내지 못했던 혹은 더 잘하지 못했던 아쉬움은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아쉬움의 색은 조금씩 짙어지고 있고, 반대로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이나 의지가 이전 보다는 더 나은 방향과 더 나은 결과물로 돌아오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래도 내가 얻은 것들은 실패를 통한 나의 성장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