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놀라는 시기가 있다. 그런 신기한 일들 중에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말들을 내 뱉을 때. 녀석의 질문과 대답을 듣다가 가끔 ‘허허’하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그런 때 말이다. 그리고,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해할 수 있었던 말들과 추억들. 돌아보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감정들. 녀석의 언어들을 기록해 두기를 참 잘한거 같다. 더 많이 기록해 둘껄…

‘나 지금 집중하고 있잖아.’

18년 언젠가 무언가를 열중하고 있는데 말을 걸었을 때

‘일부러 이런 말 어떻게 알아?’

‘난 알거든!’

18년 언젠가

‘왜 그럴까…?’

‘그러게…’

18년 언젠가

‘아빠 회사에서 울었어.’

‘왜? 사장님이 뭐라 그랬어?’

18년 언젠가 4살에게도 사장님은 절대 권력자임을 아나부다…

‘내가 ‘너’야? 나도 이름이 있거든?!’

18년 언젠가

‘나도 서울 살고 싶다…’

‘왜?’

‘서울이 좋으니까…’

18년 언젠가 김포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느낄거라고 생각했는데, 녀석도 서울의 의미를 아는건가…

‘눈꼽나면 닦아줘’

18년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니, 당시에 눈꼽이 자주 꼈었고, 때론 울면서도 이 말을 했었다.

‘누구랑 목욕할거야?’

‘응. 엠버랑 할껀데, 두려워’

18년 언젠가 두렵다는 말은 또 어디서 들은걸까…

‘할까?’

‘… 말까?’

18년 언젠가 녀석과 차로 이동하면서 참 많은 놀이와 이야기를 했었는데,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도 놀이를 할 수 있다는걸 녀석도 알아챈 듯

‘엄마. 일찍와… 엉엉…..’

18년 언젠가

‘엄마! 똑바로 긁어줘야지!’

18년 언젠가 3살 부터였나. 4살 부터였나. 녀석 잠자리는 늘 엄마 또는 아빠의 등긁기로 시작해서 등긁기로 끝난다…

‘엄마랑 호비 고를래?’

‘싫어!’

‘왜 엄마를 미워해?’

‘엄마를 미워하는게 아냐. 아빠랑 고르고 싶은거야’

18년 언젠가 아… 질문이 잘못했네.

‘뽈링아. 엘사 드레스 예뻐. 그런데 엘사 드레스보다 예쁜게 뭔지 알아?’

‘응. 뽈~~~링~~~~이!’

……………….

18년 언젠가
2018년 8월 경 어느 날

‘저희 집 비데 수명이 다되서 새로 갈았는데, 뽈링이가 ‘바꼈다!’ 그래요. ㅎㅎㅎ 깜짝 놀랬네요. ㅎㅎㅎ 대단한 아이

18년 언젠가 이모님 댁에 자주 놀러가던 녀석은 여전한 눈썰미를 발휘했다.

‘선생님이 혼내주고 먹는 건 정말 싫어. 어린이집에서 먹는건 너무 싫어.’

180914 이 때가 어린이집을 옮기던 즈음 같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사진에 그렇게 웃음이 많던 녀석은 늘 시무룩한 표정이었고, 더군다나 사진 자체도 너무 우울하게 찍은터라 우리는 분노하고, 주변에서 들리는 그 어린이집에 대한 실상을 알고는 한바탕 난리를 치고 우리는 미련없이 어린이집을 옮겼었다.

(어린이집을 옮려고 여기저기 투어를 하다가 놀이학교 한 곳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엄마. 나 여기 갈꺼야. 여기 가게 해줘.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거 하게 해줘…’

180914 이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와이프는 많이 울었다. 녀석이 생각과 의지를 말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를 고작 4살짜리가 터트리는 상황이 너무나 안쓰럽고 속상해서였다. 녀석이 했던 무수히 많은 말들 중에서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고, 여전히 마음이 아픈 말이었다…

‘피곤해? 뽈링아?’

‘응. 오늘 잠을 안잤거든…’

181105 응?

‘편의점에서 뭐 사줄께.’

‘응’

‘뭐 먹고 싶어?’

‘(시크한 표정) 내가 고를께’

181108 어 그래…

‘엄마, 아빠는 못 말린다니까’

181121 아마 로보카폴리에서 자주 나오던 말을 써먹어 본 듯

‘내일 엄마가 놀이학교 데려다 줄께. 내일 엄마 회사 안가도 돼.’

‘왜? 사장님이 늦게와도 된데?’

181122 다시 사장님 등장…

‘이모님. 오늘 안개가 잔뜩 껴서 집에 올 때 힘들었죠? 저도 오는데 안개가 잔뜩 껴서 힘들었어요.’

181203 뭐냐 너…. 4살짜리가 묻는 안부 수준이 왜 이러냐…

(녀석의 손에 비누칠을 해 주는데)

‘엄마. 비누는 조금만 써야 된데. 선생님이 그랬어.’

‘왜 조금만 써야 한데?’

‘응. 비누를 많이 쓰면 북극곰이 아프데. 그러니까 아껴써야 해. 알았지? 다음부터는 비누 조금만 쓰자?’

181206 할 말을 잃고 손 씻겨드림…

이 즈음부터 뽈링이는 ‘못한다고 해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예를 들어, 소변을 보러 갈 때, ‘뽈링이 혼자 쉬야 못할껄? 아빠가 내려줘야 하잖아.’ 그러면, 그제서야 녀석은 소변기에 앉아 쉬를 한다. ‘아빠. 혼자 못 입을껄 해봐’ 라고 말하고, 내가 ‘뽈링이 혼자 팬티 못 입으니까 아빠가 도와줄께’하면 이내 척척 입는다. ‘어… 어… 혼자 못 입는데…. 이제 뽈링이 언니구나’라는 반응은 덤으로 해 드려야 했다.

‘아빠랑 엄마 중에 누가 더 무서워?’

‘엄마가 더 무섭고, 아빤 하나도 안 무서워’

181207 이 즈음에 함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특히 나는 녀석과 놀이를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상대로 인식하던 때였다.

(카시트 옆에 사람이 없으니까 장난감이라도 놔줄까라고 와이프가 말하자)

‘엄마. 진짜 사람이 옆에 앉았으면 좋겠어. 내 옆에 사람이 없잖아’

181208 응… 그렇지…

‘뽈링아. 싼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뭐 달라고 할지 결정했어?’

‘응. 양말로 결정했어.’

181211 ?????????

‘아빠. 여기 색칠해줘. 꼼꼼하게.’

181215 꼼꼼하게…

(아빠가 요새 차에서 밥을 먹고 온다고 말하고, 그 이유가 뽈링이랑 집에서 더 많이 놀려고 뽈링이에게 요새 아빠 밥먹고 놀면 안될까 라고 묻자)

‘아빠. 집에서 밥 먹고 씻고 그리고, 나랑 돌아도 돼. 집에서 밥 먹어.’

181219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빠. 뽈링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엄마. 안전운전!’

‘엄마! 아빠한테 모든걸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181227 넌 아빠한테 말하잖아…
190114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괜찮아. 아빠가 그래도 나랑 쪼끔 놀아주잖아…’

190215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와이프에게 집안 일을 도와주는게 아니라 같이 하는거라고 말을 하는 것 처럼, 녀석에게도 내가 놀아주는게 아니라 같이 노는거라고 말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이즈음부터 했던 것 같다.

(엉엉 울면서)

‘내가 쉬해도 아빠 화 안내기로 약속했잖아. 그런데 왜 화내!’

190215 녀석이 기저귀를 떼고 한동안은 쉬를 팬티에 조금 하곤 했었다. 처음에는 적응 기간으로 우리는 이해했었고, 또 한동안은 환경 변화에 따른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즈음에 또 발견한 사실은 녀석은 노는 동안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동안에 화장실을 가지 않고 내내 참다가 실수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집중이 대부분 놀이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놀이를 끊고 화장실을 가는게 녀석은 싫었던 것 같다.

‘나 오늘 네일 받았으니까 손 안 빨도록 노력해 볼께’

190216 녀석은 검지와 중지를 꽤 오랫동안 빨았었다. 특히 졸리거나 막 잠이들려고 할 때 반드시 손가락을 빨아야 잠이들곤 했었다. 그 슨괍을 고리쳐고 와이프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했었고, 지금은 정확하게 어떤 이유 때문에 그 습관을 버렸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네일아트도 그 방법 중 하나였다.

‘나 우리집 갈래. 원래원래 우리집!’

190308 김포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우리는 이 즈음에 구의동으로 이사했다. 김포에 비해서 구의동 집은 훨씬 좁았고, 1층에서 아무런 제제없이 뛰어놀던 거실은 녀석이 뛰어다니기에는 너무 좁았고, 많은 살림살이들 때문에 위험했다. 김포에서의 기억들이 좋았던걸까. 꽤 오랫동안 녀석은 김포에서 살던 때를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한숨을 쉬고, 막막함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https://youtu.be/yVuhaMMDfjg

‘태권도는 피는 흘려도 눈물은 흘리지 않는거야!’

190315 구의동으로 이사하면서 녀석은 놀이학교를 다시 옮길 수 밖에 없었고, 다행히 옮긴 곳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했다. 커리큘럼이 다채로웠고, 우리가 생각했떤 것 보다 녀석은 몸으로 노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었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 언어 등도 즐거워했으며, 무엇 보다 녀석은 배운다는 것에 늘 흥미로워했으며 모든 것을 거침없이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언니들이랑 있기 싫다고 했잖아! 왜 그래! 난 엄마 아빠가 제일 좋단 말이야!’

190320 이날에 있었던 일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즈음에 우리를 돌봐주던 이모님과 김포에서 이별하고 나서 와이프와 우리는 꽤나 허덕이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올곧이 직장생활을 해아만 했고,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장모님이 계신 처형댁에 녀석을 잠시 몇 시간씩 맡기는 날이 정기적으로 있었고, 이런 생활을 오히려 내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우리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또래의 언니들과 지낸다는 것이 표현하는 텍스트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아이들끼리도 너와 내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그 안에서 자기의 공간과 의미를 찾아야 하는 녀석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나 보다. 이날이었을까. 나는 저녁 밥도 거른 채로 녀석을 후다닥 데리고 내려왔고, 투정을 받아주지 못하고 화를 내다가 급기야 녀석과 나는 둘이서 차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사온 뒤로 나는 감정 기복이 훨씬 심해져서 눈물도 잘 흘렸고, 화도 꽤 자주 냈으며, 녀석과 노는 것에 점점 지쳐가기도 했다. 무엇 보다 녀석도 가족이라는 의미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한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팟던 때였다.

……… (한참 뒤에)

‘아빠. 난 아빠가 맨날 맨날 화내도 아빠 사랑해…’

‘아빠 보고 싶다…’

190423

‘책 읽는 선생님한테 책 읽어줄까?’

‘싫어’

‘왜 싫어?’

‘책은 엄마 아빠랑 읽는게 제일 좋아.’

190425

‘엄마. 나 엄마 친구 이모 보고싶어.’

‘엄마 친구 누구? 엄마 친구 이름 다 말해봐. 해진이 이모? 앨리스 이모?’

‘아니. 엄마. 나 지영이 이모 보고싶어. 그 때 동생 생일 때 본 지영이 이모.’

190426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고, 그 대상이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고 싶다는 말이 꽤나 흥미롭게 들렸다.

‘할머니. 할머니는 혼자 살아요? 왜 혼자 살아요?’

190427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날. 수십가지의 이유를 말할 수는 있었지만, 단 한가지의 이유도 녀석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엄마와 와이프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아무런 말을 해 주지 못하고 우리는 침묵이 이어졌었다. 엄마가 그 침묵을 깻고, 웃으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고는 그저 어루만져 주기만 하셨던 것 같다. 이제 녀석은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이유를 알까.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이유를 할머니에게 묻는게 아니라 우리에게 물었어야 한다는 사실을 녀석은 이제 깨닫고 있을까…

‘아빠. 꽃은 꺽으면 죽어?’

‘응. 뿌리가 없어지면 죽는거야.’

‘그럼 매일 매일 물 많이 줘도 죽어?’

‘응. 물도 조금씩 줘야해. 뽈링이도 물 조금씩만 매일매일 먹잖아. 꽃도 똑같아.’

190429 집에서 작은 식물을 길러보겠다고 작은 화분을 샀지만, 물론 이내 시들어져 버렸다. ‘죽음’이라는 의미를 녀석이 어떻게 기억했을까. 가끔 녀석에게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는거야.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가 없는거야 라고 몇 번인가 말해준 적은 있지만, 고작 4~5살짜리의 아이가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죽으면 혼자 살아야 해 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저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말에 녀석은 꽂혀서 울었던 것 같다. 사실 그게 전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빠. 지유랑 버스 캠핑 또 가고 싶어. 잔디밭 있고, 버스 있는데 말이야.’

1905 언젠가 우리는 약속을 했다. 그러자고. 지나고 보니 우리는 녀석에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약속을 하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다. 지킬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과의 작은 약속을 지키는게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녀석은 상황과 관계에서 오는 약속을 하는 경우가 부쩍 늘게 되었고, 그 약속을 우리는 묵살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잊혀지도록 놔 두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그래도 녀석은 가끔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떼를 쓰기도 하지만, 녀석에게 캠핑, 특히 친한 친구와 지냈던 하룻밤이 꽤나 즐거웠던 추억이 되었나보다.

‘뽈링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전에는 토마토가 된다고 했잖아?’

‘나는 그냥 뽈링이가 될거야’

1905 언젠가

‘아빠랑 엄마 얼만큼 사랑해? 많이 사랑해? 조금 사랑해?

‘응. 19만큼 사랑해’

1905 당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나온 대사가 큰 유행을 치르고 있었지만, 녀석은 그 영화를 보지도 못했거니와 우리도 그 대사를 응용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그저 당시 녀석에게 19가 가장 큰 숫자였던거다. 그래서, 19가 가닌 10, 15 등등의 기분에 따라 낮아지는 숫자를 경험하기도 했다.

수 개월 뒤에 녀석의 가장 큰 숫자는 이렇다. ‘일천삼백사천구십팔백칠천삼십구척오십오 만큼 사랑해’

‘엄마 아빠도 내 말 먹냐?’

‘………………..’

190615

‘아빠를 압이라 부르고 엄마를 엄이라고 부를래’

‘…………………..’

1907 언젠가. 말 이상하게 줄이지 마라.

‘엄마가 나 안혼내면 좋겠어. 그리고 회사에서 일찍 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190702 녀석은 이 즈음에 부쩍 어른스러운 말들을 많이 했다. 와이프는 많은 일들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부담과 스트레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계속 허덕이고 있었다. 내가 녀석을 케어하는 부분이 너무 협소해서 와이프를 한시름 놓게 만들어줄 것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녀석은 이전 보다 훨씬 더 의미있고 조리있게 말을 했고, 마치 우리의 모든 상황을 헤아려주는 것 같은 말들 때문에 우리는 아이가 3~5살 사이에 평생의 효도를 다 한다는 선배들의 말을 다시금 공감하기도 했다.

‘아빠! 나 이제 B등급됐다!’

190716 나는 굉장히 모순되게도 녀석이 뭐든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지만, 너무 어린 녀석에게 공부를 시킨다는 관점을 굉장히 싫어한다. 놀이학교라는 사립의 카테고리를 선택했던 것도 와이프와 나의 녀석에 대한 성장의 기대를 반반 높이고, 반반 낮춘 선택이었는데, 어딜 가든지 ‘분류’는 필요한가 보다. 고작 4~5살된 녀석에게 등급을 매기고, 잘했다고 칭찬하는 게 옳은 일인지 늘 갸우뚱해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은 그런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서 아주 잘 올라간다. 그 등급이 주는 의미를 녀석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엄마나 아빠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벌써 올라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은 즐거워했다. 그럼 됐지 뭐 라고 치부하기에는 내 안에서는 늘 불만이 꼬물꼬물 올라오다가 와이프의 명확한 방향 제시가 없으면 군소리 말라는 뉘앙스의 대사가 나올 때면 쪼그라든다.

‘뽈링이 다리 오른쪽은 아빠꺼고, 왼쪽은 엄마꺼야. 팔도 마찬가지고.’

‘으앙. 그럼 내꺼는 없단 말이야? 으앙’

190722 ‘나’에 대한 자각이 녀석은 분명 또래 아이들보다 분명하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자기애’가 무척이나 강해서 자신이 소중하다는 개념을 아주 조금은 왜곡되서 표출할 때가 있다. 물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이겠지만, 녀석은 좀 심하다…

‘엄마. 우리집 왜 작아?’

190722 녀석에게 김포에서의 기억은 좋은 쪽으로 또렷한 것 같다. 크기 라는 것을 인지하고, 또 어디선가 누군가와 비교라는 것도 심심치 않게 시작한지가 꽤 지났지만, 늘 비교 대상은 김포에서의 시간들인 것 같아 보인다. 김포에서 보다 녀석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고, 사물과 상황을 보는 눈이 이제는 이해하는 눈으로 바뀌었고, 또 이전의 경험과 비교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도 당연한게 늘상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하고, 여기 저기 붙이고, 그리고, 만들고 하는 물리적인 공간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컷으니까.

나 역시도, 아마 와이프 역시도 그렇겠지만, 서울로 이사온 뒤 우리는 마음이 좁아졌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냈고, 녀석을 다그쳤고, 서두르게 만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분명 나나 우리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협소한 공간은 우리 세식구 모두의 마음을 이전 보다는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결혼해서 둘이 살 때는 작은 집이었어도 우리의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성인이었고, 나중을 기약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는 그 많은 것들에 대한 가치관을 붙잡고 지내기가 어려웠다. 성인인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유혹들은 어느 덧 4~5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로 인해서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 엄마 아빠 밖에 없는데 엄마 아빠가 화내면 누가 날 달래줘!’

190821 그..렇지…

‘더 놀고 싶어. 더 놀자. 쬐끔만. 나는 아빠랑 놀아도 놀아도 놀아도 아쉬워. 매일 매일 계속 계속 놀아도 아쉬워. 더 놀고 싶은데…’

190830 이 글을 쓰고 있는 20년 9월 현재에도 동일한 상황이다… 행복하게도 녀석은 나와의 놀이를 여전히 좋아해 주고 있다. 행복하고,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녀석과 노는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녀석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기본적인 (역할)놀이에 대한 기본 시나리오를 읊는다. 물론 큰 맥락만 던져 주신다. 나머지는 임기응변이고, 쪽대본이다. 말을 많이 해야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 체력적으로 내가 훌륭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내가 선택한 놀이의 방식이기도 했지만, 녀석은 이런 놀이를 좋아해 준다.

하지만, 하루에도 많은 말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녀석과의 놀이 시간은 때로는 너무나 힘든 일을 저녁에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사실 꽤 크게 자리잡고 있다. 와이프에게야 조금 피곤해서 오늘 할 일을 미루자거나 좀 쉬겠다고 하면 언제나 와이프는 흔쾌히 그러라고 하지만 녀석은 다르다! 정말 끝까지 끝까지 놀자, 더놀자를 100번은 외친다! 아빠가 아프건 피곤하건, 그날 말을 많이 했던 녀석은 상관이 없다.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는데, 피곤해도 나랑 놀아야해라는 당위성이 아주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가끔 정말 정말 늦게 가고 싶은 날들이 있는데, 막상 중년의 아빠는 이제 갈 곳이 없다…

‘아빠랑 더 놀고 싶은데… 아빠랑 더 놀고 싶어… X100

190830 그만 놀자고 하면, 정말 거짓말 아주 조금만 보태서 100번은 말씀하신다…

‘아빠. 기다려봐. 내가 침착하게 설명해줄께’

190903 응. 침착하게.ㅋ

(급하게 녀석이 초코칩 쿠키를 먹고 계실 때)

‘뽈링아. 아빠가 할 말이 있어. 항상…’

‘… 모든 것은 항상 천천히. 알아.’

191019 어. 그래…ㅡㅡ

‘엄마. 네비게이션이 왜 밤이 되면 까만 색이 될까’

‘엄마는 잘 모르겠는데’

‘밤이 되면 깜깜해지는데 네비게이션이 밝으면 눈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네비게이션이 까맣게 변하는거래’

191102 어… 우리도 알거든?

‘엄마가 다시 회사에 가면, 뽈링이를 데리러 갈 수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떡해?’

‘그냥 잘 다녀야지모…’

191115 그냥 잘 다니는건 뭐냐…

(겨울왕국 2 관람 중, 엘사가 위기에 빠져 있는데 안나가 솔로곡을 부르고 있는 장면에서)

‘저럴 시간에 구하러 가겠다’

191130 서사와 감동 그리고, 영화에 대한 맥락을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야겠니?

‘아빠. 잔소리 좀 하지마라’

200203 그…래…

(코 세게 풀라는 엄마의 말에)

‘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200304 그게 최선입니까?

(엄마도 퀵보드 타고싶어 라고 예쁘게 엄마가 말하자)

‘애교부리지마’

‘엄마는 뽈링이 사랑하니까 이쁘게 말할거야’

‘나도 사랑해. 근데 애교부리지마’

200311 엄마도 아빠도 너보다 애교 잘 부릴 수 있거든?

(네일삽에서 뽈링이 이름의 뜻을 물어봐서 내가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라고 말하니, 네일샵 사람들이 오. 아. 하는 걸 듣고선)

‘아빠 또 우쭐댄다’

200312 ……………………………….

(아주 오래간만에 3~4가지의 놀이를 하고 난 뒤 뽈링이랑 같이 침대에 누웠더니)

‘아빠. 사랑해. 미워한다고 말해서 미안해. 사실은 아닌거 알지? 사랑해’

200317 녀석은 그날 밤 나를 엄청 많이 그리고 계속 안아주었다.

‘엄마가 키즈칼리지 힘든지 물어봐서 싫었어요. 나는 잘 할 수 있는데 엄마가 나를 믿지 않나봐요.’

‘나는 키즈칼리지에서 해인이가 제일 좋아요. 해인이는 친구들에게 다 친절하고, 상냥해요. 해인이는 모든 친구들과 친해요. 나랑 제일 친하지는 않지만 나는 해인이랑 제일 친해지고 싶어요.’

‘해인이는 키즈칼리지 2층에 살아요. 키즈칼리지는 건물 3층에 쭈욱 있는데, 해인이는 밑에 층에 산대요. 밑에층이니까 2층 맞죠? 4층…? 2층인 것 같아요. 한층만 올라오면 키즈칼리지라고 했어요. 엄청 가까워서 편하겠죠?

200324 이전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 그 유치원에서의 놀이 반, 수업 반의 커리큘럼이 나는 마음에 들었었고, 다행히도 내 출근 길 회사 부근이어서 아침마다 녀석과 함께하는 출근 길에서의 에피소드도 많았었다. 30분에서 40분 정도 막히는 출근 길이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때로는 내내 동요를 함께 목청높여 부르기도 했었고, 역할 놀이를 하면서 가기고 했었고, 조잘조잘 일상을 녀석이 들려주기도 했었다. 몇 번인가는 나오면서 내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면서 차 안에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간 적도 있었고, 내내 녀석이 좋아하는 동화만 들으면서 차를 몰았던 적도 있었다.

행복했던 기억들 중에는 주차하고 1분 정도 되는 도보 길에서 손잡고, 안아주고, 장난치고, 비가와서 우산을 쓰며 재잘거리던 모습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유치원 문앞까지 걸어가던 모습들. 왜 시작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헤어지기 전에 꼭 30번씩 안아주던 기억들. 사랑한다고 오늘도 재미있게 지내라고 말해주고 종종 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가던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 모습들. 그 당시 우리의 일상이 쉬이 지나가지는 않았지만, 녀석과의 등원은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숱하게 많은 웃음과 안쓰러움과 대견함 그리고, 서글픔 등이 늘 함꼐 했었던 그런 길이었다.

다시 한번 놀이학교에서 유치원으로 옮기고 와이프와 나는 녀석의 적응이 심하게 걱정되었다. 잘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지만, 고작 6살짜리가 겪어야 되는 새로운 환경들이 우리는 못내 염려스러울 수 밖에. 하지만,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었던 녀석의 생각은 우리의 우려를 씻어냈고, 오히려 녀석의 새로운 환경, 배움 등에 대한 갈망이 혹시나 다른 동기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는 나대로의 걱정도 쌓였다. 물론 녀석의 모든 속내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녀석 나름대로 기대와 두려움을 녀석의 방식대로 이겨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난 우리집이 싫어. 우리집이 너무 싫다고!’

200411 이 날 녀석이 왜 이렇게 말하며 소리쳤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점점 더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고,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교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고, 현재에 대한 녀석의 불만들이 터져나왔었던 것 같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녀석이 말할 때면 늘 마음이 많이 아프다. 더 크게 뛰고, 더 크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물리적인 것들이 녀석의 마음 깊은 곳 까지 작게 만들까봐. 우리는 지금까지도 같은 고민과 생각만 할 뿐.

(침대에서 엄마랑 둘이 대화)

‘엄마. 나 제이콥이 너무 좋아. 그래서 나 shy해. (얼굴 붉어짐)’

‘엄마가 화를 안냈으면 좋겠어. 한숨도 안쉬고.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겠어’

200630 매일은 아니지만 와이프는 침대에 누우면 녀석과 이런 저런 일상과 일상에 대한 생각을 많이 묻고 들어주고 들려주기도 했었다. 꼭 오늘 어떤 일이 있었어라는 주제 보다는 와이프는 녀석의 감정 상태를 공감해주며, 이야기를 꺼내도록 많이 유도해 주었다. 수면등만 켜져 있고, 올곧이 엄마와 딸의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들은 침대 밑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나에게 샘나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고작 3달이 지난 지금 우리의 잠자리 모습은 그렇게 정겨워 보이지 않다. 녀석은 11시가 넘어서야 짐이 들었고, 8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일어나면서 아침의 동선들이 꼬이고 스트레스를 받는 등의 일상이 너무 이어졌기 때문에 근래에는 9시 30분에는 무조건 잠을 자야한다고 강압적인 약속을 받아낸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제 녀석의 잠들기 전의 시간은 무척 딱딱해졌고, 와이프와 나는 녀석이 잠을 청하려하지 않고 딴 짓들을 할 때마다 쉬이 화를 내곤 한다. 마치 이제는 잠자리가 성스러운 시간이어서 침묵이나 작은 움직임조차 허용되지 않는 의식처럼 말이다.

고작 3달전 우리의 모습이 참 많이 그립다.

‘응. 엄마. 나 오늘 진짜 화가 많이 났어. 내가 화내도 좀 받아줘. 엄마는 화내지 말고…’

‘엄마. 키도 끝나고 올 때는 화가 풀렸으면 좋겠어. 엄마가 어제 밤에 이제 화 안내보겠따고 약속했잖아. 기억나지? 그러니까 화를 풀고 오면 좋겠어. 나 속상해…’

200701 녀석이 이런 말을 했다고 와이프가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읽고 자신의 감성이 이러니 타인에게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마 이 날에도 나는 짜증을 냈던 것 같다. 녀석이 원하는 걸 엄마는 들어줬던 것 같은데,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녀석의 한 두가지의 작은 행동과 말 때문에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가 어른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점점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 것만 같다.

‘이런 아빠 필요없어! 이런 아빠 필요없다구! 맨날 늦게 오고 놀아주지도 않고 나한테 짜증내고 귀찮다고 하면 이런 아빠 이제 필요없어! 으아아아앙’

200709 회사에서의 프로젝트가 힘겹게 중반을 달리던 시점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정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거의 매일을 야근하고 늦게 귀가했다. 어쩌다가 일찍 집에 들어온 날에는 너무 지쳐서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거나 소파에서 몸을 기대고 쉬는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수 개월을 그런 모습만 보면서 녀석은 점점 나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와의 친밀도는 결국 함께 보내는 시간에 비례한다는 말이 증명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아마 이 날도 같은 날이었을게다. 지쳐서 귀가를 했고, 나를 보자마자 녀석은 놀아달라고 떼를 썻고, 나는 놀 수 없다고 아빠는 쉬어야겠다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했던 것 같다. 결국 녀석은 사실이지만 날카로운 외침을 나에게 전했고, 나는 그 날카로움에 상처를 입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성장에 분명 와이프와 나의 노력이 있었는데 몇 개월의 피곤함을 핑계삼은 나의 말과 행동은 녀석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만 같은 죄책감이 꽤 오래 이어졌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우선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뻔한건데, 그 뻔한 것들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이렇게 힘들지 나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녀석과의 관계가 어긋나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아빠랑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 아빠와의 모든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200714 이날은 아주 오래간만에 약 1시간 30분 가량을 옷토넛, 폴리 놀이를 함께 했었다. 그리고, 이날 우리 가족은 한 침대에서 아주 즐겁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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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링이 어록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나 놀라는 시기가 있다. 그런 신기한 일들 중에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던 말들을 내 뱉을 때. 녀석의 질문과 대답을 듣다가 가끔 ‘허허’하거나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그런 때 말이다. 그리고,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서 이해할 수 있었던 말들과 추억들. 돌아보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그런 감정들. 녀석의 언어들을 기록해 두기를 참 잘한거 같다.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