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주변에 소위 ‘음악’을 한다던 친구들이 몇 몇 있었다. ‘덕수’라는 녀석도 그 중에 하나였는데, 어느 날엔가 나에게 ‘나만의 그대 모습’이라는 노래를 들어봤냐고 했다. 그리고 B612라는 그룹을 들어본 적이 있냐고도 물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난 ROCK음악에 대한 특별한 애호가 있다거나 매니아적인 성격을 띠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거의 모든 십대들의 우상이었고, 나 역시 그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 레코드 점에서 줄을 서서 대기한 적도 있는 그저 대중의 음악을 좋아하는 부류였다.
덕수가 워크맨으로 들려주었던 음악은 그때 생각으로 많이 ‘둔탁했던’음악으로 기억한다. 찢어지는 보컬의 고음과 쟁쟁한 기타소리. 그리고 둥둥 울려대던 드럼의 소리가 모두 내겐 당시에는 각각 들려올 뿐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서태지를 좋아했으면서도 난 알아요나 하여가에서 간주중에 들려오는 기타 소리가 하드락 계열의 강한 사운드였다는 사실조차 아주 오랜 후에 알았다. 그런 내게 그 음악은 과히 듣기 좋은 음악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고 2 말엽부터인가. 노래방 문화가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놀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부터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 이라는 노래를 심심치 않게 친구들의 목소리로 부터 들려나오곤 하였다. 내 주변 친구 녀석들도 노래라면 적어도 빼거나 못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여러번, 아니 갈 때마다 몇 번씩을 불러 대곤 하였다. 하지만, 늘 번번히 엄청난 삑사리. 그 삑사리들은 당시 나도 마찬가지였고, 누구에게나 정말 듣기 싫은 왕 짜증이었음이리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지금은 녀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함께 노래방엘 같이 간 적이 있었드랬다. 동행했던 주변 녀석들이 그 노래를 한 번 불러보라며 난리가 났다. 아마, 소문에 그 녀석만이 그 노래를 소화해 낼 수 있다고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 같다. 초반에 녀석은 음을 썩 잘 따라가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이 없다기 보다는 다음을 위한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녀석은 드디어 문제의 첫번째 고개에 도달하고 있었다.
‘어두운 거리에 홀로 선 느낌 사라져버린 나만의 그대 모스으읍~’
믿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단숨에, 정말 아주 단숨에 그 부분을 쉽게 처리해버렸다! 그리고…
‘안개속에 가려진~~~ 희미한 너의 모습도. 워워~~ 시간이 흐르며어언 워우예에~ 이제에에에는 잊고 싶어’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아… 이것이 바로 감동이구나… 녀석은 노래를 마치고 멋적은 듯이 머리를 긁으며 웃어보였다. 참… 그 모습이란. 멋있다고 해야할지.. 감동의 곱배기라고 해야할지…
10년이 지났다.
이미 이 노래는 전설이 되었고, 여전히 이 노래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수 많은 기대와 흥분이 전해지고, 노래방이 아닌 어디서든 이 노래를 모르면 ROCK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나 역시도 이젠 이 노래에 더 이상의 삑사리는 없다. 노래방과 함께 했던 세월도 벌써 십년이 지났고, 그 만큼 나도 내 주변 친구들도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나 성량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에서 부터인지 ‘나만의 그대 모습’은 천천히 소화해 내기에 이르렀다.
올해 내 생일에, 그러니까 약 두 달 전에 B612의 보컬이었던 서준서에 대한 기사가 실렸었다. 그의 화려하고 소름끼치는 고음 덕분에 오히려 그는 많은 인기를 타지 못하였다. 서준서라는 그의 이름조차 B612라는 이름 뒤에 묻혀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학창시절 내게 많은 꿈을 주었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잊혀져가고, 지워져 간다는 것이 쓸쓸한 단상이 되곤 한다. 아마 그 역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만의 그대 모습’과 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고 부르며 좌절하고, 또 다시 시도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곡을 다시 부르지 못할 것임을. 나 역시도 ‘나만의 그대 모습’을 알았던 그 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 없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