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중에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그리 크지 않은 이 공간에서 많은 일들을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누리고 있는 것과 포기하고 있는 것 그리고, 누려야 할 것들과 애써 찾아야 하는 것들 사이의 공간을 매꾸는 일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자신과 싸워가면서 해내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늘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 설득하고, 설득 당하고, 요구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매일 매일 겪으며 지내는게 우리의 일상임에도, 늦은 시간까지 모니터를 바라보며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그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하지만, 아직 그 가치에 대한 기준이 확고하지 않거나,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그들에게 합리적인 판단을 위한 이성을 깨우는 일 보다, 한번 더 웃어주고, 한 번 더 말을 걸어주는 정도로 그치고 맙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텐데 말이죠.
얼마 전, 택시 기사 아저씨의 넋두리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이미 정년을 퇴직하신 나이가 되신 듯 보이는 아저씨는 전날 약주를 많이 하셔서 오늘은 좀 쉬고 싶었는데, ‘내무부장관’님께서 나가시라고(일 하시라고) 등 떠밀어서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몇 십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를 떠올렸습니다. 지금 2007년 6월 5일 새벽 이 순간의 나는 몇 십년 후의 나를 그려보며 살고 있는지. 지금 많이 소중한 젊은 한 때를 정말 소중하게 그려가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 정도의 나이가 되서, 지금의 하루하루 일어나는 수 많은 선택의 모양들을 다 기억하고, 옳은 결정이었다고 쉽게 판단할 수 있을지 등등.
나의 일상에 과연 얼만큼의, 어떤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요. 그 가치는 늘 상대적이어야 할까요, 절대적이어야 할까요. 미래의 가치가 현재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요, 현재의 행복이 미래의 가치를 더 높여줄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삶에 대한, 일에 대한, 사랑에 대한 해답들을 쉽게 얻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많은 물음표가 따라다니는 것은 또 왜일까요. 고작 일년, 삼년, 혹은 십년을 먼저 겪었다 해도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일까요. 살면서 즐거운 일들만 있으면 재미 없는 세상일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적어도 나는 왜 늘 즐겁고 유쾌한 일들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는지.
우리의 해답은 내일이 되면 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