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고미숙
★★★
연암을 내가 교과서 밖에서 처음 만난 곳은 좀 색다른 곳이었다. 우리 학교 문과대 화장실 소변기 앞…
물이 있는데도 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 연암 박지원
고등학교 때, 조선시대 열하일기라는 중국 기행문을 쓴 사람은? 연암 박지원이라고 외웠던 그 한 두 줄의 구절보다, 연암은 오히려 우리 학교 화장실에 걸려진, 상황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위트-물론 이건 학생회에 어느 학생이 연암의 한 구절을 찾아서, 또는 다른 구절에서 그대로 가져왔을테지만-가 조선시대 미지의 사람인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첫 계기였다.
우선 열하일기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연암은 청나라 황제의 70수 생일을 맞아 축하하기 위해 사신들과 동행한, 그것도 공식루트가 아닌 흔히들 이야기하는 ‘꼽사리’껴서 그 사절단에 투입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선진문물이었던 중국에 관한 많은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을 보고, 그리고, 적으면서 중국 유람을 했던 것이었다.
책을 읽고 와우북에서 매체서평 해 놓은 것처럼, ‘살아서 펄펄뛰는 문장들’이 느껴졌다. 아니, 나는 연암이라는 인물자체에 대한 지은이의 동경어린 호기심 보다는, 고문(古文)을 현대의 사람이 이렇게 즐겁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더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른 매체의 서평과 마찬가지로, 평생 가야 한번 읽을까 말까한 고전, 그것도 우리나라의 고전을, 인물에 대한 감상적 느낌과 당시 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찰 그리고 넘치는 유쾌함을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딴지걸께 생각났는데, 난 느낌표표 책을 정말 싫어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싫다. 매체가 나서서 책을 읽자고 독려하는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 또 공감하는 바이지만, 인터넷에서나 서점에서나 책을 고를 때는 그런 추천은 절대 사양이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남들이 다 보는 영화나, 베스트셀러라는 책은 거들떠도 안보는 부류. 예전에 나는 그 부류를 시덥지 않은 멋이라고 치부해버렸지만, 지금은 반대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미처 찾아내지 못한 감춰진 책, 글, 작가를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껴본 사람은 내 심정을 조금 이해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