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고 UX고 스마트폰이고 기술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 나은 기술들을 기대하고 있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쉽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SF 영화에서나 보았던 그런 미래는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현재의 기술에 대한 불만 보다는 아주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대화를 이끌어 나갈 줄 아는 센스다. 교과서 참고서적 교양서적 등 초등학교 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만 하더라도 분명 수백 혹은 수천권이 될지도 모른다. 그 많은 책들에는 여러 문제들을 먼저 접했던 선배들도 있고 영웅도 있고 지금의 고민을 한창 하는 상황도 있었을께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글들을 써 왔던가. 처음 연애편지를 쓸 때의 심사숙고하던 그러한 느낌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양들은 참 어찌보면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미 다 배운 셈이다. 말하고, 듣고, 읽고, 쓰고 하는 일련의 방법들은 사실 쉬운 부분은 아닐터.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언어에 대한 이해, 종교, 심리, 문학, 예술 다양한 부문들이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부분이 바로 인문학, 즉 인간과 인간의 문화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문학자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즉, 모두가 기본이라고 여기는 그러한 공통의 합의는 사실 ‘센스’에 가까운 부분도 많아 보인다. 굳이 인문학이라는 학제적인 성격을 띄지 않고서도. 그럼, 사회생활에 미치는 인문학의 영향은 과연 학문적인 성격으로만 나누어야 하는 것일까. 그 역시도 아니다. 인문학은 사람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깊고 풍부하고 즐겁게 나누게 해 주는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기본적인 가치들을 얼만큼 자유롭고, 오해 없이 나누느냐에 가장 큰 목적이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오바하면 에티켓에 해당되기도 하고, 센스에 해당되기도 하며, 과하게는 철학과도 일맥 상통하기도 한다.
누가 사회생활을 할 때 인문학적인 성향을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단 한명도 없다. 그 사람의 성장과정, 환경, 지인들, 학력 등을 묻는다. 그리고 그가 얼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얼만큼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러한 평가는 ‘이 사람을 이 사람으로써 이해’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국 이러한 인문학적인 성향은 겪어보지 않으면,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공유하지 않는 한 찾아내기 어려운 부분인 셈이다.
결국 경험(Experience)이다. 실패와 성공을 떠나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우리 주변의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기 마련이다. 한쪽만 바라보며 다른 쪽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오바일까. 이러한 모든 성향들이 결국 얼만큼의 경험이 ‘그’의 정신적인 성숙도를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여전히 많은 경험을 하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나는 그대가 Generalist가 되길 원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