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고, 야근에 밤샘에 사람들과의 부딪힘에 끝이 없던 30대의 초반의 기억들이 있는데,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생각들과 움직임, 노력, 다짐 등이 많았었는데, 시간이 주어져도 이제는 그 때 가졌던 당위성이 부족해서인지 꽉 짜여진 것 같지는 않아요. 물론, 비우고 내려놓고 하는 과정에서의 생각들과 움직임, 다짐들도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내가 정작 쏟아부어야 하는 에너지를 먼 훗날에 떠올렸을 때 ‘그 때 내가 참 잘 했었구나’ 라고 나 스스로에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요즈음 준비하는 훗날에 대한 준비들은 개인적인 것도 있고, ‘개인’을 넘어선 것들도 있지만, 30대의 초반에 품었던 굉장히 멀리 있는 미래에 대한 준비가 이제는 가까이에 있는 미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렇겠지요. 이전 보다 움직임이 덜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마음은 급해진 이유가. 내가 남기고 싶은 것들에 대한 목록은 자꾸 늘어만 가요. 세상속에서. 저 멀고 끝없는 우주의 하나의 한낱 점도 되지 않는데, 남겨야 할 것들에 대한 목록이 필요할까요. 오늘은 그냥 먼 훗날을 준비하는데 너무 멀리 간 듯 하네요. 아.
구글덕에서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와 같은 일반 문서작성기의 기능 뿐만 아니라, 쉽고, 간단하게 설문조사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다. 절차나 스텝도 매우 간결해서 워크샵 현장과 같은 즉석 장소에서 개발자 없이도 너무 쉽게 문서를 생성하고, 그에 대한 통계 화면도 즉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1. 만들기
구글덕(현재는 구글 드라이브로 공식 명칭은 변경된 상태)에서 만들기 메뉴에서 ‘양식’을 선택한다. 이 양식 메뉴를 통해서 접근하면, 설문의 항목과 스타일을 지정할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된다. 용어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여러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라디오버튼 스타일, 다양한 선택지를 함께 중복 체크할 수 있는 체크박스 스타일, 목록형태를 제공하는 드랍다운 스타일, 일반 텍스트와 단락 구성은 물론이고, 1에서부터 10점까지의 척도를 계산해 주는 10점 척도 스타일, 또한 각 필드를 옵션이냐 필수냐로 구분할 수 있는 기능까지 설문조사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은 다 갖춘 셈이다.
2. 편집하기
이렇게 만들어진 문서는 작성하다 보면, 순서도 바꾸어야 하고, 내용도 편집되어야 하고, 너무 길게 작성하다 보면 단락 또는 페이지를 나누어야 할 필요성도 생기고. 편집은 그저 슥슥 드래그하고, 슥슥 클릭하고 입력만 하면 현재 보고있는 화면에서 모든 데이터가 바로바로 갱신되는 구조이다. 사실 늘 구글이 잘 해왔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3. 공유하기
공유하는 방식은 조금 더 심플하게. 특정한 인원들에게만 배포하고 싶을 경우에는 ‘이메일로 양식보내기’와 같은 기능을 사용하거나, 아예 Public하게 공유하려면 ‘구글플러스’를 통해서 공유할 수도 있고, 고유링크 기능을 통해서 아예 퍼블릭하게 배포할 수도 있고, ‘웹페이지에 양식삽입’메뉴를 통해서 iframe 형태로 html이 지원되는 문서 안에 삽입할 수도 있다.
4. 통계보기
설문조사의 기능의 완성은 사실 ‘결과 데이터’이다. 이 결과 데이터를 추출하는데 만약에 수기로 하나씩 세면 그건 데이터가 아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이 간단하고 심플한 설문조사 도구는 바로 아래와 같은 결과 화면을 제공해 준다.
간단하고 손쉽게 설문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피드백을 받기 위한 불필요한 시간 소모적인 낭비를 줄이고, 적극적이고 쉽게 데이터로 처리할 수 있는 구글덕의 양식. 활용할 가치가 너무나 높은 기능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4~5명의 친구녀석들이 있다. 지금이야 다들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고, 애기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때의 우리는 삶에 있어서 참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였을까. 녀석들이 내게 특이하게 다르게 대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엔가 나는 그녀석들과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몇 주 가량을 멀리했던 적이 있었다. 얼굴을 봐도 그냥 외면하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고, 나 혼자만의 깊은 굴 속으로 들어갔던 잠깐의 기간이 있었다. 녀석들은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그 이유를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떠올려 보면, 나를 제외하고 몇 몇 녀석들은 중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어떤 무형의 ‘끈’이 있었고, 그 끈이 녀석들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게는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선가 그 끈이 그들과 내가 ‘다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버렸다는 것 같다.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다름이 어떠한 시점에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래에는 자주 느끼게 된다. 그 구성원, 그 원에 속하지 않았다는 상황에 대한 인식은 참 빠르게도 어두워지는 일이라서 금방 티가 나기 마련. 특히 내게는 말이다.
커다란 원과 작은 원. 그 두개의 원이 교차하는 공간.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교차점의 끝에 있는 공간. 그 공간들의 틈은 결국 우리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구간이다.
나는 이제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제작자로써 가장 즐거운 일은 프로젝트 하나 하나가 회자될 때. 그것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우리를 찾을 때. 그 때가 아마 이 일을 하고 내가 가장 신나게 그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는 일일게다. 어느덧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이 함께는 아닌 일상들이 더욱 많아지고는 있지만, 뿌듯함은 아마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와 의지가 유지되는 프로젝트는, 반드시 다시금 회자되는 때가, 그것도 즐거운 기운으로 회자되는 때가 온다. 오늘 아침 Initiation Meeting이 그랬다.
그런데, 정말 회현역 그 부근은 정말이지 다 모여 계신다.
전에 함께 잠시 일했던 직원의 블로그를 몰래 오래간만에 들어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