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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

Sigi.Stories | 2002/04/04 19:26 | 재회#

이제 공연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시작부터 짜증만 내고 있다. 그냥 그네들에게 짜증을 냈다. 이렇게 해서는 정말 작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교 다니는게 막바지에 접어드는 것 같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군대엘 갈 것인가, 한 학기를 조용히 죽어지내야 할 것인가. 후. 군 문제가 한치 앞으로 다가왔다는게 이상하게 실감이 난다. 점점 학교에 대한, 학교 사람들에 대한 실망은 늘어만 가고, 찾으려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찾지도 못하고 시간만 죽인다. 학점은 바닥을 기어 다닐테고, 그렇다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늘어가는 것은 괜한 화, 짜증, 투정들 뿐이다.
대학 2학년 생활이 이렇게 존재에 대한 실망을 안겨줄 뿐이라면, 차라리 마음만은 따뜻했던 고등학교때가 낫지 않을까. 이대로, 이대로 물러나기엔 너무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12년을 투자했는데 얻은거라곤 약해진 내 체력 뿐.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 여기, 대학이라는 곳을 찾은 것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시작을 잘못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님 모두가 이러고, 이러면서 그냥 지내는 것인지, 누군가 조금만 일러주면 좋을텐데...

아직도 난 내 인생을 모조리 책임지기엔 너무 어린가...
- 1996.05.06 : 푸념


그때는 참 모든건 다 알 수 없는 것들 뿐이었지.
그리고 어느때 보다도 생각이 많았던 때이었기도 하고.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내가 기획해서 올린 우리 동아리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숱한 사람들과의 인연들. 공연 당일날 내 친구녀석은 연락두절되버리고, 연습은 연습대로 성에 안차고...

그래도...
참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열정을 다해 가르친다는 것.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었던 것 같아. 피아노 하나 없이 그저 내 통기타 반주에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맞추고, 생소했던 곡 하나를 처음부터 가르치며, 파트를 나누어주고, 화음을 넣고, 음색을 하나하나 맞추어가면서 한곡을 마무리했을 때. 녀석들의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해. 대학교를 다니면서 나를 '선배'라고 인정하고 믿어주었던 사람들. 참 고맙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최고는 아니었지만, 내 사비로 빚을 내서라도 녹음실을 빌려서
녀석들의 목소리를 담아두고 싶어 안달을 하기도 했던 그 때.
공연 당일. 그렇게 친구녀석도 빠지고 마지막 리허설도 개판으로 진행해버려 화가 나서 녀석들에게 호통치고는 사라져버리고 돌아왔을 때. 녀석들은 무대에 없었어. 곧 공연이 시작될텐데, 목소리라도 맞춰봐야할 녀석들은 아무도 보이지가 않았지.

그런데말야.
그냥 그냥 정말 아주 작은 일상이었을텐데, 난 많이 가슴이 뭉클해졌어. 남자화장실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렸어. 그것도 아주 멋진 화음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야. 녀석들은 나름대로 긴장을 풀려고 화장실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녀석들끼리 멋지게 해낸거지..

문 밖에서 그냥 소리만 듣고 있던 나는. 왜 그녀석들에게 고마움을 느꼈을까... 그 공연이 나를 위한 공연도 아니었고, 내게 이득이 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야. 그런데, 그냥 고마웠어. 녀석들이...

녀석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론 공연은 온갖 실수와 어긋난 동선과, 불협화음에 아주 난장판이었지! 내 인생에서 내가 직접 꾸미고 만들고, 가르치고, 알리고, 사람들을 모이게하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했던 첫번째 내 기획물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그들과의 기억은 아주아주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서 그리고 가슴속에서 오래 남아있을 재산이 될거라고 믿어.

그리고 여전히 난
노래를 하고 싶어... 노래를 가르치고 싶고. 누군가가 그랬듯이 그저 내 앞에 내 노래를 듣고싶어하는 사람이 단 한명 뿐이라도 나 역시도 준비했던 큰 공연을 그 한 사람만을 위해서 시작하고 싶어.

- 200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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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4 19:26 2002/04/04 19:26
TAG 공연,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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