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지나치고, 이야기하면서도 문득문득 ‘이 사람은 정말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자주 마주치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분명 서로의 어느 단면만을 보면서 지내고 있을터인데, 어느덧 상대방도 나도 서로에 대한 ‘정의’를 내려버리기가 일쑤다.
물론 그 사람이 가까운 벗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요즈음 그렇게도 자주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틈에 있으면서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과 뒤로 넘어가도록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 헌책에 대한 탐닉 – 전작주의자의 꿈(조희봉)
☞ 다른 누군가의 애틋한 추억. 헌책 사랑하기 – 모든 책은 헌책이다(최종규)
왜 그런지 헌책방은 그런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곳에 들어서서 내가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또는 알고 있는 작가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그곳에 놓여져 있는 저 책은 어떤 사람의 어떤 낡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담고 그곳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한다.
일전에 홍대 ‘숨어있는 책’에서 찾은 COSMOS라는 책-지금은 절판되었고 70~80년대 우주에 관한 이론을 다룬 기초적이고 흥미로운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은 우리에게 CONTACT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칼세이건의 작품이다. 내가 그 책을 찾으러 다니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당시 중학교 시절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읽었다는 어떤 아저씨. 콘택트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 받아 칼세이건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있다는 어떤 학생. 지금은 칼세이건의 많은 이론들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당시에는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져오게 했던 책이라며 꿈많던 20대시절을 돌이켜보던 중년의 어느 아빠.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 그 책을 너무나도 반갑게 집어들고 보니, 세월을 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지, 책장 책장 마다 누렇게 바랜 색을 보며, 분명 이 책 또한 이 책을 사면서 또는 선물 받고서, 이 책을 읽으면서 꿈꾸었을 어떤이의 꿈을 내가, 그렇게 많고 많은 시간과 사람들과, 장소를 돌아다니다가 나에게 온 이 낡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내겐 아쉬워하고 있는 20대 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넉살이 좋아서 그곳 주인아저씨나 아주머니, 혹은 일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그저 손에 쥐고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두리번거리다보면 늘 2시간은 족히 지나갔던 것 같다.
지금이야 시간이라는 또 어설픈 핑계를 대면서 많이, 자주 움직이지 못하지만, 또 몸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추운 날이 지나면 내 이야기가 아닌 남의 이야기를 찾아서 돌아다녀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