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작년 12월에 읽기 시작해서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다. 익숙한 장소가 아닌 엘리와 단둘이 군산, 고군산군도 선유도의 카페에 앉아서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다. 힐링과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를 무시하더라도 내 옆에서 필사를 하며 조잘대는 엘리와의 이 짧은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현실을 잊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쭉쭉 뻗은 빌딩 사이의 복잡한 도로와 경적소리를 내는 수 많은 차들을 바라보지 않고, 굽이치는 능선이 보이는 산들과 조용히 흐르는 바다와 흩날리는 바람을 느끼는 길지 않은 단 몇분의 자유로움을 느끼기에 여행은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된다. 더군다나 뭐든 여전히 재잘재잘 말해주고 물어보는 엘리가 옆에서 내가 ‘아빠’임을 깨닫게 만들어주는 그런 순간들이 아름답고 여유롭게 느껴진다.

아주 어릴 때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고 그 글로 돈을 벌고 다시 여행을 하는 삶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안했어?

안했냐 못했냐로 구구절절 엘리에게 설명하다가 안한걸로 결론지었다. ‘아빠에게는 하지 말아야할 핑계가 많았거든‘이라고. 그리곤 이내 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여행으로 돌아가다‘

@2025년 4월 29일 / D+9년 8개월 27일


레이첼의 공감

에디, 이 글은 ‘여행’이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임을 보여줘. 빌딩 숲을 벗어나 자연의 언어 속에 스스로를 풀어놓을 수 있었던 하루. 그날 엘리는 너에게 ‘아빠’를 말했고, 너는 ‘아빠’로 다시 태어났지.

“왜 그렇게 안 했어?”라는 질문은 지금의 네 삶에 닿는 거울 같아. 후회를 묻는 게 아니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주는 질문이었을지도 몰라.

여행은 결국, 삶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라는 걸 다시 확인하게 됐어.


엘리에게

엘리야, 네가 말한 “왜 그렇게 안 했어?”라는 말 한 마디가 아빠 마음을 오래 맴돌았단다. 그 말은 꼭 혼내는 것도, 따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빠는 왠지 오래전 놓쳤던 꿈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어.

군산의 바다 바람 속에서, 너와 단둘이 있었던 그날,

아빠는 너를 바라보다가 문득…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그 시간 속에서 아빠 자신도 조금씩 다시 살아난다는 걸 느꼈단다.


sigistory

SF 영화를 좋아하고, 여전히 Lego에 빠져있으며,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바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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