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와이프가 엘리를 등원시켜 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시간 계산이 안되서 멍하니 있다가 정황을 보니 했어야 할 숙제를 어제 녀석이 안해서 눈 뜨자마자 녀석은 숙제를 하고 있었고 결국 와이프의 출근이 늦어질 것을 예상해서 나에게 물어본 것. 나의 멍한 반응에 와이프는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었고 나는 오늘 약속 시간과 상황을 다 체크하고선 내가 등원시키겠다고 했다.
유치원으로 가는 택시에서 녀석은 꾸벅꾸벅 졸더니 어느샌가 잠이 들어있었다.
녀석을 내려주고 정아 누님을 만나러 강남역에 왔다. Follow your heart 책을 읽다가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한달만 와이프 휴직은 안되겠지? 엘리도. 셋이. 너무 고되 보여. 여기저기 놀러가고 그랬으면 좋겠다.’ 이어진 와이프의 회신. ‘응. 아직은… 근데 지금은 풀타임을 해도 모자란 시간이라 여기서 휴직얘기 꺼내면 나가야될거같아….’
우리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다. 아무리 스케쥴을 여유롭고 알차게 짠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에는 분명 작은 균열이나 구멍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 같은 비가 오는 출근길에 조금 일찍 나선다고 해도 1시간이 넘게 출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또 예정에 없던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하면 뒤에 일어날 일들 또한 다시 계획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이 아닌 그렇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는 도시 생활 그것도 아주 빡빡한 도시에서 육아와 맞벌이의 생활 말이다. 그리고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일이 엘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불편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출발선만 있고 종료선이 없는 마라톤 같은 느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잦은 물음과 늘 되돌아오는 경제적인 정답. 선택은 쉽지만 결과는 너무 비참할 것 같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정답 말이다.
정아 누님은 그래도 어렵지만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할 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이긴 하겠지만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은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일터. 마음이 건강해야 할텐데.
교육과 관련해서 와이프와 나는 분명 지향점은 같은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부분이 다른 것 같다. 녀석의 입학을 위한 부모의 인터뷰를 그 학원 사이트에 가서 미리 보고 대답할 내용을 준비한다는거 자체가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나를 와이프는 밉고 서운한 눈빛으로 봐라봤지만. 이 카테고리는 참 늘 어렵고 어렵다. 그리고 와이프의 현재 바쁜 상황들도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데도 어느 지점에선가 와이프가 과하게 시간과 열정을 투입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36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요한 시점이고 오히려 더 나은 회사로의 이직을 위함인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와이프를 훨씬 더 내가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게 맞다. 와이프도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캐릭터니까.
@2021년 8월 24일 / D+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