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그는 내게 호감이 없었거나 사라진 듯한 인상을 풍겼다. 길지 않은 질문들과 쏟아지는 침묵. 나를 이렇게 망가진 사람으로 보는 건 그 뿐이다. 그는 나를, 나의 미래를 걱정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못미더운 시선을 그저 언어로 표출하는 것인가. 좋아하는게 무어냐, 무얼하고 싶냐는 물음에 당당히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잘..’ 라며 말끝을 흐리던 나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곳에서 아예 살림을 차렸던. 과방 모퉁이 구석에서 대각선 모퉁이로 이어지는 곳에 눈을 어지럽히던 그의 빨래들. 소파는 침대가 되었고, 테이블은 식탁 겸 주방이 되었던 그의 5평 남짓했던 공간. 그곳에 나는 소파를 이어 붙이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는다.
청주행 버스를 포기하고 과방에 앉아 멍하니 있으며 아주 오래전 이 ‘방’의 주인이었던 괴나리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3수를 하고, 일, 이년을 군에서 보내고, 그리고 또 휴학하고. 그래서 지금의 내 나이를 훌쩍 넘겼을 그때의 괴나리는 그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며 살았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그가 생각했던 미래를 현실화하였을까. 여전히 괴나리로 불릴 자격이 있을 만큼 그의 철학을 안고 살고 있을까. 그때의 것이든, 지금의 것이든 괴나리의 충고가 듣고 싶다. 그 괴상한 날나리의 생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