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이 발표됐다. 중요한 자리라며 리더회의에 모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하시던 사장님께서 무거운 목소리 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발표할 조직개편을 위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고, 듣고를 반복하고, 요 몇 개월을 너무나 고민하면서 보내셨다며. 그리고, 이 조직개편의 인사발령에 대해서는 내부에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좋든 싫든 긍정적으로 받아들려주길 희망한다고 하셨다.
크게 I본부와 D본부로 나뉘고, 각 본부에는 이사, 하위로 그룹장들이 포진되었다. 나는 D본부 본부장, 이사를 맡으라고 하셨다.
사장님의 서두 때문인지 술렁이지는 않았고, 어떤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아니다. 현재 이런 저런 상황들을 타개하기 위해서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물음표가 자꾸만 커지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이사가 된다는 일이 기쁜 일이 아니다.
이사가 되고 싶었던 때는 오래 전에 지났고, 여기에서 이사가 되어서 누리게 될 어떤 유/무형의 것들 보다 당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이사가 되고 싶은 의미가 너무나 컷던 때였다. 하지만, 당시는 결국 무위로 돌아갔고, 이사님들이 생겼으며, 자연스럽게 그런 승진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이런 때에 승진이라니. 더군다나 이 작은 조직에서 기존에 이사님들은 상무이사가 되었고, 도대체 그 상무이사의 직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그들은 다시 위로 위로. 아마 내가 원하던 모습은 언젠가는 그 레벨에서 움직이고 싶었다는 욕망이 어제서야 드러난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윗 사람들이 한단계 다 같이 위로 올라간 것 뿐.
우리 조직이 가져야 할 유연한 부분은 더 멀어졌고, 탑다운의 올드한 기업의, 이익을 찾아야 하는 기업의 모습을 우선시 되고 있다는 결과물이 암담하게 만들었다. 이 조직에서 이사를 4명이나, 그것도 상무이사 2명에, 그냥 이사 2명. 이런 직함이 필요한 것일까. 그것도 이런 때에. 오래 고민하셨다고 했지만, 여전히 또 물음표를, 더 큰 물음표를 만드셨다.
내가 여기에서 돈을 벌고, 기여하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행복하게 오래도록 지낼 수 있기 위한 무언가를 찾아내고 싶었는데, 나는 오히려 더 무겁고, 부담스럽고, 큰 짐을 떠 안게 되었다. 나는 선택해야 할까. 환대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내가 사랑했던 여기에서의 나의 모습이 서글퍼졌다.
H이사님만 조심스럽게 전화로 축하한다고 해 주셨다.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어제 밤 늦게까지 시간이 지나도록 H이사님을 제외하고 누구 하나도 나의 이사 발령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전해주지 않았다. 괜히 간간히 휴대폰 문자만 확인하던 내가 처량할 정도.
뭐랄까. 여러 리더들과 했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이번 나의 인사발령으로 희석된 느낌. 아니 혼자만의 느낌이겠지만, ‘변절’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근래의 나의 상태 때문일까. 원하지도 않은 자리에, 원하지도 않은 타이밍에 내가 누군가를 리딩한다는 것이 너무나 말이 안되는 상황인데, 그걸 이렇게 내가 감당해야 하는가.
나는 J이사님이나 사장님처럼 그 많은 리스크와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모든 것들을 잃을거고, 내가 가진 나에 대한 정체성도 잃을 것만 같다. 단순한 두려움 보다는 내 옷이 아니라는 강한 거부감만 남는다.
이제 나는 무엇을, 어디로, 누구와 향해야 하는걸까…
@2015년 9월 4일 / D+3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