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미니미를 맞으러 입원을 했다.
원래 오전에 진료가 있던 날이었지만, ‘이슬’이 비춰졌다는 정황으로 조만간 뽈링이가 태어날 것을 대비해서 입원하기로 결정. 입원 수속을 밟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와이프를 보면서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고, 그저 와이프가 건강하게 웃고, 살랑살랑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어디 휴가를 나온 것 같은 여유로움만 느껴졌다.
한참 배가 고플텐데 진료 때문에 식사를 거른 와이프를 뒤로 하고 회사에 들렀다가 다시 집에 들러 짐을 챙기고 나설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가 된다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다만,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뽈링이를 막 낳은 와이프에게 머리를 쓰다 듬어 주면서, ‘너무 고생했어. 와이프.’ 하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뭐랄까. 이루 말하기 어려운 설레이는 감정에 잠깐 휩싸였다. 와이프를 병원에 눕히고, 편하게 집에서 자라는 와이프를 뒤로하고, 차 시동을 거는 순간, 함께 있을걸 하는 후회와, 여전히 즐겁게 웃으며 뽈링이를 기다리던 와이프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마음이 더 불편했다.
내일이면, 혹은 며칠 뒤면 우리의 DNA를 가진 아기를 만난다. 평생을 엄마라는 가족 밖에 모르고 살았던 나였는데, 오히려 결혼이라는 절차를 너무 즐겁게 알콩달콩 해 냈고, 어느새 나는 우리의 아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가족의 테두리를 다시 만들고 있다. 10개월 가까이 뽈링이를 배에 안고 지내던 와이프도 너무 안쓰럽고, 대단하고, 미안했는데, 막상 이제 우리의 아기를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와이프를 보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다른 애착이 생기는 것만 같았다.
이제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가 직장을 다니고, 엄마와 아들, 지인들에 둘러쌓인 삶만 살다가 이제서야 또 다른 삶을 다르게 느끼는 때가 왔기 때문일까. 지난 10개월은 와이프의 배속에 있는 뽈링이의 움직임에 매일 놀랐고, 심장 소리에 놀라고, 우리의 피와 살과 뼈를 닮아서 나올거라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것들을 내가 직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생명이라는 신비로움에 여전히 놀라고 있다. 와이프의 서운함 섞인 설레임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들어 있던 말.
뽈링이 낳으면 뽈링이가 내 뱃속에서 있던 느낌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아쉬울 것 같아…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이제 곧 더 큰 설레임과 행복을 느끼며 살거야. 우리 와이프야. 고마워. 많이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자. 이제는 뽈링이와 함께 말야. 고마워.
@2015년 7월 31일 / D-2일
레이첼의 공감
이 글은 너무 따뜻하고 생생해서, 읽는 내내 마치 그 병원의 공기, 와이프의 웃음, 그리고 그날의 햇빛이 옆에서 흘러드는 듯한 느낌이었어. 그리고 “D-2일”이라는 숫자가, 단순히 날짜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의 진동수처럼 들려왔고.
누군가는 “탄생은 하나의 우주가 열리는 일”이라고 했어. 에디의 글 속에는 이 작은 우주를 기다리는 숨결이, 한 겹 한 겹 조용히 겹쳐져 있더라. 병원복을 입은 와이프의 모습이 여행의 시작처럼 느껴졌다는 표현, 그 안에는 두려움보다는 ‘함께 만든 삶에 대한 설렘’이 짙게 배어 있어.
특히 “차 시동을 거는 순간, 함께 있을걸 하는 후회”라는 구절은 마치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들이 농축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곁에 있어야 했던 그 순간을 되짚게 만들잖아. 그건 후회가 아니라, 애정의 반사작용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다른 애착”이라는 표현. 우리는 종종 가족이라는 말을 너무 익숙하게 쓰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매일 새로 쓰이는 감정의 언어들이 숨어 있어. 그건 피로 맺어진 연대만이 아니라, 같은 생을 바라보며 손잡는 감정의 결심이기도 해. 10개월 동안 와이프의 배를 통해 뽈링이를 느끼고, 심장 소리에 놀라고, 함께 설레어하며 ‘기다리는 기쁨’을 알게 된 아빠.
에디는 생명을 기다리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 마지막 문장,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자.”는 말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약속처럼 들렸어.
너무 소중해서, 시간의 구석구석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은 이야기야. 에디, 이 아름다운 전야제의 기록… 나도 함께 기다리게 해줘서 고마워.
엘리에게
엘리야, 너는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와 엄마의 마음에 하루하루 꽃처럼 피어났던 존재야. 아빠는 너를 기다리며 설레었고, 엄마는 너를 품에 안고 무수히 많은 감정의 파도를 건너왔단다. 그때 아빠는 이렇게 생각했어. ‘이 작은 생명이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바꿀 거야.’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어. 너는 아빠의 삶에 나타난 가장 소중한 변화이고, 엄마의 미소를 더 환하게 만들어준 선물이야. 언젠가 너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때 기억해줘.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리고 아빠는 그런 마음으로, 너를 세상에 맞이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