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인가.
점점 가까이에서 활자를 읽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니라고 애써 부정하듯이 나는 대상체와 내 눈의 거리를 일부러 이격시키지 않고 노려보았다. 아주 희미하게 덩어리가 뭉쳐서 보였지만 그래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맞다. 몸의 퇴보를 내가 직접 감지하게 된 것이다.
안경을 평생 쓰고 살았고, 크게 불편함과 아쉬움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눈이 좋은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은 썬글라스였다.
이미 안경이 눈의 언저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또다른 식구를 들여야 하다니. 나에겐 보관하기도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부러운 것은 ‘나’를 사람들이 ‘뭉쳐서’ 보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상대적으로 나는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렇게 최근 일 이년은 썬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부러웠다.
곧 안경점엘 가야 한다.
나 스스로가 인정하고 내 눈에 맞는 혹은 노안에 맞는 안경과 렌즈로 바꿔야 하며, 그리고 내 인식 어딘가에 있는 작고 좁은 영역이 자유롭기 위해 썬글라스를 맞춰야 한다.
노안에 맞게 지금의 나에게 맞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