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십 여년 전에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를 집어들었다.

나에게 어떤 책과 영화는 다시 읽거나 보기가 어렵다. 그 책과 영화를 향유했던 그 시절로 몸과 마음이 모두 휩쓸려버려서 적어도 며칠은 잔향이 남을 것을 알기에 쉽게 집어들지 못한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와 계기 없이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다시 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는 유리의 성 DVD를 사기도 했다. 고작 몇 장을 읽으면서 어떤 시간대로 빠져들어버렸다. 사실 정확히 몇 년도 언제라는 특정하지 못하는 시간대로. 눈은 이제 노안으로 잘 읽기도 쉽지 않은 활자로 들어갔지만 머리는 온통 ‘두오모’를 나에게 처음으로 알려줬던 누군가의 기억들 속으로.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나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아니 그때의 나는 분명히 또렷하게 모든 순간들과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나는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바로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기대를 읽지 못했다. 엉뚱한 길에 빠져서 내가 걷는 길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놓쳐 버렸고 한참을 앓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놓아주는 일 뿐이었다. 떠나겠다는 이유는 나에게 설명되지 않았고 그 날 그 자리에서 그 눈을 보면서 나는 결국 돌아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비를 맞으며 종로를 걷던 그날을 기억한다. 꽤나 긴 시간을 멍하게 걸으며 조용히 울었다. 되돌릴 수 있을거라는 얕은 기대는 온 몸이 다 젖을 때까지도 나는 아닐거라고 믿으며 울었다. 앞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앞을 보질 못했다. 앞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앞을 보지 못했다. 내가 보던 ‘앞’은 그 사람이 보던 ‘앞’과 달랐다. 멀리 돌아와서야 비로소 그 차이가 보였다.

엘리의 눈을 바라봤다.

가까이에서 안아달라고 했다. 엘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나를 안아줬다. 내가 가까이에서 작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고 엘리의 체온을 느끼며 엘리의 따뜻함을 가까이에서 바라봤다. 내가 놓치지 않으려고 바라보는 대상을 나는, 그때의 다른 이의 눈을 보던 것처럼 보고 있지만 오늘은, 오늘의 나는 그때처럼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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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를 좋아하고, 여전히 게임과 레고에 빠져있으며,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바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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