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가끔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정말 가만히 쉬고 있는 날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데 주변 환경이 게으를 수 없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천성이 게으를 수 없어서 주변을 부산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누구나 자기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사실들이, 가끔은 그렇게 분별할 수 없는 사실로 다가오는 그런 때.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지. 사람도 그래.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그 사람이 참 낯설때.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일 때 그런 마음이 들겠지.

왜 은수가 상우에게 헤어지자고 했을까? 한밤중에 먼길을 달려올 만큼 사랑하던 상우의 마음을 왜 은수는 버려두려 했을까? 열병같이 은수의 마음에 서서히 그리고 잔잔히 젖어들어갔던 상우의 감정을 은수는 왜 부담스러워 했던 것일까? 그리고, 결국 다시 이루어지지 않은 그들의 사랑은 각자의 기억속에서 그저 가끔 꺼내어 보고 살며시 웃고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지는 봄날의 기억같이 남겨지는 것일까? 결국 사랑은 그렇게 변하고 잊혀지는 ‘봄날’과 같은 것일까?

‘헤어지자’
‘내가 잘 할께’

‘우리 같이 있을까?’
‘….’

둘의 사랑은 처음과 같지 않게 되었다. 너무도 쉽게 웃으며 상우에게 내 뱉은 은수의 한마디.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상우의 마음. 어떻게 그녀를 잡고 싶지 않았을까. 많이 희미해질 때까지 멍하니 있던 상우. 문득 다시 서로의 눈이 마주친 상우와 은수. 하지만, 상우는 그 흔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은수에게 달려가지 않는다. 서로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던 사이였는데 상우는 은수에게 어색한 손짓을 보내며 헤어진다. 그리고 상우에게는 그들이 많이 행복해하던 그 ‘봄날’의 은수의 기억을 떠올린다.

계절의 시작은 봄이 아니다. 봄은 겨울이 지나야 오는 계절이다. 그래야만 봄의 소중함을 깊이, 오래 간직할 수 있다…


sigistory

SF 영화를 좋아하고, 여전히 게임과 레고에 빠져있으며,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바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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