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병원엘 찾았다.
도움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에게 인정해주기 위한 상징적인 증표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미 그 상징성은 사실 두 세번의 몸의 신호로 깨닫기는 했었다. 그 상징성의 증표를 얻기까지 시간이 또 걸리긴 했지만.
또 다시 이 길에 섰다. 잠시 멈추기 위해서 뒤에 일들을 예측해 보는 길. 그 길에는 늘 사람이 서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답시고 선택하지 못하는 갈래길. 어쩌면 쿨하게 ‘괜찮아요.‘ 를 기대하고 있는 마음. 한켠에 웅크린 미안한 마음. 설령 그게 일로 맺어진 관계라도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딱 10년 만에 다시 그 길에 섰다.
10년 전에 심하게 앓았던 마음의 병이 도졌고, 그때의 사람들과 그때의 감정들이 스물스물 나에게 파고들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의식 못하는 한숨을 내 쉬게 된다. 아. 의사선생님이 복식호흡하라고 했었지…
아마 다른 사람들도,
우리도 매일 앓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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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 Father – Bold Journal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볼드저널에서 '어바웃어파더'라는 섹션의 코너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카피에 혹해서 덜컥 인터뷰 요청을 했다.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고, 역시 시간이 좀 흘러서 어바웃어파더에 인터뷰 내용이 기재되었다.
201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