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와 와이프는 오전 스케쥴을 하러 10시 30분 경에 집을 나섰고 나는 소파에 앉고 누워 알쓸신잡을 봤다. 비정상회담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슈퍼밴드를 보면서도 특히 알쓸신잡을 보면서 이렇게 강렬하게 저 맴버에 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빨려들어갔다. 아마 지적허용을 장려하는 알쓸신잡의 모토와 나 같이 그런 수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대리만족을 부여해 주기 위함이 아닐까.
청소하시는 이모님이 불편한 기색을 비추자 나도 덩달아 불편해져서 집을 나왔다. 며칠 전 상환부장님과 먹었던 스시집에서 알쓸신잡을 보며 식사를 하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알쓸신잡을 이어서 시청했다.
알쓸신잡을 보면서 특히 유시민과 김영하 작가를 보면서 뭐라고 해야할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친숙하면서 낯설었다. 나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대하지 못하고 늘 그저 그런 반응들을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비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순수한 표정을 드러내어도 되었을텐데 잠깐 돌아본 나의 표정들은 늘 무재미로 미리 판단해 버리는 무표정. 갑자기 60대의 아저씨이자 할아버지 유시민의 표정과 목소리에 질투가 났다.
차 문에 손이 끼어서 다쳤다는 엘리와 와이프는 이른 귀가를 했고 이래저래 지친 와이프는 쪽잠을 청했고 엘리는 숙제를 시작했다. 숙제를 마치고 미역국에 긴단히 밥을 챙겨주고 나도 같이 저녁식사를 때웠다.
와이프는 장모님 일로 큰처형댁으로 향했고 엘리는 티비를 보고 나는 책을 읽다가 어제 마무리 못한 에반게리온 최종회를 봤다. 도대체 이 에반게리온은 무슨 의미들을 이런 현란한 대사와 서정적이며 작위적인 화면들을 가득 채웠는지 정밀 나로써는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다. 중간 중간 작화들을 아름다웠지만 시간이 아까웠다는 생각 뿐.
9시경이 되자 엘리는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가자고 했고 그렇게 30분 여를 둘이 자전거 산책을 나섰다. 아직 두발 자전거는 무리이겠지만 녀석이 그래도 계속 페달을 밟는 것이 커가고 있구나를 짧게나미 다시 실감.
돌아와서 간단히 씻고 집을 정리하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녀석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신과 인간 그리고 사람에 대한 질문을 했고 어설프게 진화론을 설명하고 어설프게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제 그런 이야기들에 관심이 가는지 나머지 책들도 읽고 싶다고 한다. 내일 엄마에게 물어보자고 하고는 오지 않는 엄마를 더는 기다리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녀석이 날 또 서운하게 했다. 늘상 있는 등 긁기 시간이 외서 그저 나는 가까이 와 달라고, 그래야 긁기가 쉬우니까 말했는데 녀석은 ‘아빠는 왜 그렇게 댓가를 바래?’라는 말에 어이가 없고 서운해서 그냥 자라고 하고는 돌아 누웠다. 녀석이 ‘댓가’라는 말의 의미를 100%아는 건 아니었겠지만 맥락은 정확하기에 더 서운했달까. 단지 내가 네 등을 더 잘 긁기 위해서 가까이 오리고 한게 댓가냐며 짜증스런 빈문을 하고 돌아눕는 순간주터 녀석은 훌쩍훌쩍. 그러다 먼저 잠이 든건지 아니면 그래도 안쓰러워서 한침 뒤에 내가 등을 긁어주는 것을 느끼면서 잠이 든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녀석은 아마 서운하고 아쉽고 외롭고 하는 등의 감정으로 잠이 들었을테다… 잘 때 잘대로 녀석을 외롭게 재우지 않겠다고 여라 번 다짐했는데 내가 쉬는 동안 그래도 몇 cm는 더 가까워졌는데.
엘리는 오늘은 슬프게 잠이 들었다…
@2021년 8월 16일 / D+2,2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