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9시 30분. 오늘 하루 자유 시간을 갖는다는 와이프는 그 즈음 집을 나섰고 나는 천천히 움직이고 일어나서 TV를 시청하고 계신 따님을 위한 따뜻한 식사를 준비했다. 녀석이 보는 소피아는 내가 재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가장 교휸적이고 가장 협동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만드는 진취적인 여성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의 퇴사와 맞물려 다행히도(?) 와이프의 스케쥴이 복잡해졌다. 장모님께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고 회사 일은 늘어만 가고, 알바에 엘리의 스케쥴에… 내가 쉬는 동안에는 당연히 우선순위가 바뀌는게 맞지만 와이프는 올곧이 내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 있나부다.

엘리는 시크릿쥬쥬 드레스를 입었다. 티아라를 쓰고, 날개옷도 입었다. 나는 녀석이 옷으로 주목 받는다는 것 보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자신감을 더 북돋을 수 있다면 나이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코스튬을 기준으로. 그런 드레스로 꾸미고 녀석은 야호창작소에 들어가고 나는 스타벅스에 앉아 마티네의 끝에서를 펼쳐 읽었다. 요즘 읽기는 주제나 카테고리를 정했다기 보다는 상황과 심리를 글로 적어 묘사 즉 표현하는 것을 다시 배운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다. 마티네의 끝에서를 읽으며 냉정과 열정 사이가 떠올랐지만 번역체가 일본어를 직역한 듯한 표현들이 거슬려서 그런 거슬림들을 자꾸 찾아내는 읽기가 되고 있다.

기타를 꺼내들었다. 고등학교 때의 수준과 실력이 그 때에 머물러 있는데 줄을 튜닝하는 방식부터 요즘스러워졌달까. 튜너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게 신기하다기 보다는 뭔가를 배운다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사실 깊은 건 아닌데 그 배움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조금은 심장박동과 아드레날린이 다르게 뛰고 솟아나는 걸 느낀다. 기타 줄을 맞추면서도 그런 긍정적인 배움의 아드레날린이 다소 분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 레고 클래스는 프로그램 앞에서 엘리와 나는 좌절했다. 일단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을 익히는 건 차치하더라도 마우스와 키보드를 가르쳐준다는 것 부터가 쉽지 않고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난관은 아이디어였는데 이게 전체 브릭을 모르는데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결국 내가 원하는 브릭을 찾아내야 하는데 이걸 엘리에게 마우스부터 조작 검색 선택 등 너무 많은 조작 정보를 알려줘야 하는 부담감에 우리는 진도를 많이 빼질 못했다.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마우스 좌우 클릭을 알려줬단 정도? 근데 터치하는 새대에게 커서를 알려주고 분절된 행동과 결과를 녀석이 이해해줄까…

마티네의 끝에서를 다 읽었다. 여운이 조금은 남을 것만 같았다.

거실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 분위기를 내며 엘리와 둘이 아주 불편하게 잠이 들었다.

@2021년 8월 14일 / D+2,2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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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를 좋아하고, 여전히 게임과 레고에 빠져있으며,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바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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