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간, 셔틀 버스
5년을 넘게 강남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던 딸은 6시 부근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녀석의 학교는 직접 차로 이동하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학교 셔틀 버스의 출발지가 우리집이었기 때문에 7시 10분에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즉 우리집을 시작으로 여러 루트를 돌다가 8시 부근에서야 학교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나와 와이프는 딸을 배웅하기 위해서 정해진 요일 없이 주섬 주섬 옷만 대충 입고 셔틀 버스에 태우기 급급했다.
아침밥을 챙겨줄 생각도 못하고 그저 7시 10분에만 맞추어서 태워보냈다. 등교도 하교도 모두 1시간씩이나 걸리는 루트를 이동했고,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눈이 오고 비가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매일 녀석과 우리는 그런 아침을 보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침에 헤어질 때 자주 웃으며 좋은 날을 보내자, 웃으며 저녁에 만나자는 말을 하면서 인사하곤 했었다.
왜 우리집은 나 아침밥 안차려줘! 나 배고프면 자주 배가 아픈데 늘 아침밥을 안먹으니까 더 자주 아프잖아… 엉엉
7시 10분은 나에게는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수 년간 해왔던 기본적이고 성실한 기준이었다. 나 보다 녀석은 더 성실했고, 더없이 성실했다. 그런 녀석이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뒤부터는 비록 매일은 아니었지만, 아침 셔틀 버스를 타기 전에 어떻게든 과일이든 간식이든 아주 간단한 식사라도 챙겨주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매일 두시간을 셔틀 버스를 타고 등교와 하교를 하도록 그런 환경에 밀어 넣고 수 년을 지내게 한 우리가 잘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 즈음에 무척 자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아침에 간신히 눈꼽만 떼고 배웅을 했던 내 모습이 딸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달, 리무진 버스
딸과 오사카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인천에서 집 근방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3~4명의 무리가 우리 앞쪽에 있었고 뒤쪽에는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리무진 버스 도착 몇 분 전에 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딸을 두고 공항으로 다시 들어 갔었다. 화장실을 나와서 바로 앞 게이트로 향하는 내게 딸의 전화가 울렸다.
아빠. 천천히 와. 내가 기다리고 있어~!
자리를 비운지 고작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녀석이 전화한게 의아 했었다. 통화를 끊고 바로 게이트를 나서자 너무 밝게 나를 맞이하는 딸 뒤로 긴 줄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1~2명만 남아서 짐을 넣고 탑승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줄 앞쪽의 사람들과 심지어 우리 뒤쪽에 있던 사람들까지 거의 다 탑승한 상태를 보자 극심한 짜증이 밀려왔다. 어린 아이가 혼자서 줄을 이탈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순서를 기다리거나 아이에게 단 한마디 물어볼 생각도 없이, 그 많은 어른들이 다 그냥 탑승했단 말인가? 심지어 기사님은 나와 딸이 기다리는 것을 확인했고 목적지도 구두로 체크했었는데, 어떻게 보호자가 어디갔냐는 물음조차 아이에게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버스에 자리가 모자라서 입석으로 가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맨 뒷줄에 불편하게 앉아서 다리를 뻗지 못해서가 아니었지만, 물론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던 기본적인 상식과 에티켓 그리고, 배려라는 사회가 작동하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왜 아이에게 향하지 않았느냐는거다.
딸은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 사람들의 움직임을 눈치챘었겠지만, 오히려 잘 기다려주고 있으니 걱정말라는 의미로 나를 밝게 맞이했던거였다. 나는 탑승한 사람들에게 모두 들으라는 듯이 ‘어떻게 애가 혼자 있는데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차례를 무시하고 탈 수가 있지? 정말 어이없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하.. 정말’ 라며 온갖 짜증이 섞인 말투를 내뱉으며 남아있던 맨 뒷자리에 올라 탔다. 나의 짜증이 동반된 분노를 감지한 녀석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유튜브만 보고 있었다. 마치 나의 화가 자신의 잘못인 양 말이다.
며칠 전, 시내 버스
퇴근 길에 전화가 왔다.
아빠. 엉엉… 버스기사님이 내가 내릴 곳을 지나서 내려줬어. 벨도 누르고 내려달라고 했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머릿속에서는 몇 가지의 고려사항과 판단이 떠올랐지만, 입으로는 명확하게 할 말이 나오질 않아서 몇 초간은 ‘어… 어…’만 내뱉었다.
우선 진정하고, 주변에 가장 밝은 곳으로 천천히 이동해. 아빠가 위치를 좀 확인할께. 잠시만
서둘러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녀석이 있는 위치를 확인해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으로 이동하게 하고 겁을 먹고 울먹이는 딸을 안심시키며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도착해서 집앞에 하차하는 10여분 동안 ‘무서웠겠다. 괜찮다. 아빠랑 걷던 길이다. 곧 아는 곳이 나올거다… ‘등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면서 무사히 귀가를 시켰다. 딸과의 통화를 끊고, 버스 노선을 확인하고, 딸의 동선을 캡쳐하고, 버스 회사를 검색하고, 민원을 넣을 수 있는 곳에 전화를 했다. 민원 수신처는 조금 더 정확한 민원처를 알려주었고 나는 집에 도착해서 한 두 시간 뒤에 아래와 같은 민원을 넣었다.
수고하십니다.
3월 **일 저녁 18:45분 경에 A에서 B로 가는 1-1 버스에서 제 딸이 분명히 벨을 눌렀는데도 정치하지 않고 B에서 하차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시다싶이 A에서 B의 한정거장이 꽤 긴 거리입니다. 아이는 A 도착 전에 벨을 눌렀고, 기사님은 무시하고 A에서 정차하지 않고 B 정류소에서 정차해서 아이를 내리게 했습니다. 아이는 내리던 곳이 아니니 당황하고 무서운 상황이었습니다. 내리자마자 아이는 울면서 저에게 전화를 했고, 택시를 잡아서 안전하게 귀가를 시켰습니다.
일전에도 1-1 버스에서 어린이 카드를 미처 챙기지 못해서 일반 체크카드로 태그하면서 ‘어린이요’라고 했는데 윽박지르듯이 ‘어린이카드 써!’라며 그냥 일반요금으로 결제처리해서 제가 콜센터에 전화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물론 별도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요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불친절한 1-1 버스 기사님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원칙적으로 어린이 교통카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확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너무나 화가나서 콜센터로 전화했더니 이 URL을 알려주셔셔 여기에 민원을 넣습니다.
도대체 1-1 버스 기사님들은 왜 다 그 모양이지요? 어린이가 혼자 버스에 타면 조금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는거 아닌가요?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데, 그 기사님 찾아내서 저희 딸에게 사과하시던지 불친절로 뭔가 처리를 하시던지 피드백을 주십시오.
아이가 버스 번호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위치추적 앱에서 동선과 시간대를 첨부합니다.
해당 버스는 퇴근할 때 자주 탔던 버스이고, 딸과 함께 자주 이동하는 동선과 겹치는 버스여서 자주 타고 내리던 버스였다. 위의 신고 내용에도 언급했던 것 처럼, 딸이 혼자 버스를 탔을 때 불친절한 상황들을 몇 번 마주했는데 어린 아이를 혼자 버스에 태워 보내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차올랐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더 분통이 터져서 민원을 넣으면서도 필요한 기본 정보와 팩트가 필요했지만 나는 남아있는 짜증과 분노를 그대로 글로 써내려가고는 이내 ‘저장’버튼을 눌렀다.
오늘, 마을 버스
최근 딸과의 아침이 달라졌다. 바로 지난 주까지만 하더라도 녀석은 6시 즈음에 일어나서 7시 10분에 집 앞에 오는 셔틀버스를 탔었는데, 최근 전학을 간 뒤로 아침 8시경에 집 근처 마을버스를 딸과 함께 타고 등교와 출근을 함께 하고있다. 녀석 등교를 위해 나는 출근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고작 십분 정도이지만 나란히 앉아서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녀석은 전학 간 학교가 마음에 들었는지 비록 가방은 무거워졌지만, 아침에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마을 버스까지 걷는 그 짧은 5분. 버스에서의 고작 십여분.
그렇게 녀석과 함께 출발하는 아침을 나누고 헤어질 때면 녀석은 버스에서 내리면서 꼭 짧은 입맞춤을 해주고 내린다. 사람들이 많건 적건 간에. 수 년간 그리고, 최근에 겪었던 버스에서의 안쓰럽고, 짜증스럽고, 화가 났던 기억들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학교 셔틀 버스 창문에서 손하트를 날리던 그런 날들도 지나갔지만, 이제는 그저 충분한 느낌이다.


